지난번 비대면 진료를 왜 시행하게 됐는지에 대한 내용(코로나19 팬데믹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비대면 진료 ①)에 이어,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현황에 대해 알아본다.
비대면 의료는 환자가 의료인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모든 의료 형태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원격의료를 포함하지만 그보다 많은 의료 형태를 포함할 수 있는 개념이기에 아직 명확하게 합의된 정의 또는 범위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의료계뿐 아니라 산업계에서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인 이슈로 비대면 시대가 도래됨에 따라 비대면 진료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기 때문. 의료계, 학계, 산업계는 물론 환자 단체에서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대한 각각의 원칙에 대해 논의했다.
비대면 진료의 사업 범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뜨겁게 논의 중이다ㅣ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의사협회, “해외 사례 참고하여 충분한 논의와 검토 필요”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 연구소는 해외 주요국들의 재진 위주 비대면 진료 시행 보고서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의정연은 지난 4월 18일 G7 국가들의 비대면 진료 초진 허용 상황을 코로나19 이전 및 기간, 현재로 나눠 기간별로 재검토했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이전 메디케이드에서 초진을 허용했다. 메디케이드는 메디케어와 달리 저소득층을 위한 공적 보험제도로, 각 주마다 메디케이드 정책에 차이가 있어 보편화된 전반적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 미국은 2024년 12월 31일 자로 비대면 진료 초진 등 완화했던 다양한 비대면 진료 규제 조치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독일의 비대면 진료는 독일연방의사협회의 표준의사직업규정 제7조 제4항 제3문을 근거로 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비대면 진료는 대면진료의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되도록 허용됐지만 대면진료 없이 비대면 진료만 하는 것은 금지돼 있었다. 의사의 조언과 진료는 의사와 환자가 직접 진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대면진료를 하면서 필요한 범위내에서 원격의료를 보조수단으로써 사용할 수 있다.
의정연은 "G7 국가들의 비대면 진료 초진 현황을 재검토한 결과, 코로나19 이전에는 영국과 미국 단 2개 국가에서만 초진을 허용했다"라며 "현재에도 초진을 허용하는 국가는 대부분 주치의나 단골의사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덧붙여 "보건의료정책은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돼야만 한다"라며 "특히 그 정책이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정책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비대면 진료에 대해서 정부와 의협은 지난 2월 9일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대면진료 원칙 △비대면 진료를 보조수단으로 활용 △재진 환자 중심으로 운영 △의원급 의료기관 위주로 실시 △비대면 진료 전담 의료기관 금지라는 대원칙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원산협, “환자 중심의 상시 의료 서비스 마련 방향으로 가야”
그런가 하면,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비대면 플랫폼 기업들은 초진 환자도 비대면 진료 대상자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을 회원사로 보유하고 있는 산업계 단체인 원격의료산업협의회(이하 원산협)는 "재진 환자 중심 비대면 진료는 시대 역행하는 원격의료 신 규제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대한의사협회와 합의한 재진 환자 중심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 추진 원칙에 대한 반발이다.
특히 원산협은 이번 시범사업안에 따르면 △30일 이내에 △동일 병원에서 △동일한 질환으로 △1회 이상 대면 진료를 받은 이력이 있어야만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이는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선택하는 국민의 고충과 수요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방침이고 지나치게 과도한 규제라고 비판했다. 원산협은 "동일한 질환으로 30일 내 대면진료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인과의 간단한 문진을 통해 더 큰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기회조차 막는 것은 건강권 침해"라며 "환자 중심의 상시 의료 서비스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를 다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8월 말까지 계도 기간…현장 목소리 반영할 것
의료계와 산업계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은 '필수의료 분야에서 원격의료의 공공적 역할'을 주제로 열린 한국원격의료학회 춘계 학술대회에 보낸 축사에서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반드시 이루겠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추진하면서 의료 접근성을 높여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자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했다. 시범사업으로 비대면 진료 공백을 해소하고 각계와 소통해 제도 안착에 힘쓰겠다는 의미. 보건복지부는 오는 8월 말까지인 계도기간 동안 현장 건의 및 불편사항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과 관련하여, '의사가 환자를 진찰할 때 직접 대면해 진찰하는 것이 원칙이며, 비대면 진료는 이러한 진료를 보완하는 수단'이라고 밝혔다. 의료법 개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감염병 단계가 낮아져 감염병 예방법에 근거한 비대면 진료 시행이 종료되어, 비대면 진료가 전면 금지되는 상황에서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해 보건의료기본법에 근거한 시범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다만 정부 시범사업으로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하는 것은 대법원 판례, 시범사업 성격 등을 고려할 때 불가능하며, 진료가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는 재진 환자와 비대면 진료가 불가피한 의료약자(섬〮벽지 거주자, 거동불편자)에 한정해 시범사업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국민의 건강 증진이라는 원칙 아래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만성질환관리료 산정대상 11개 만성질환으로 대면진료를 받은 지 1년 이내, 그 외의 질환의 경우 30일 이내인 경우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11개 만성질환은 △고혈압 △당뇨병 △정신 및 행동장애 △호흡기결핵 △심장질환 △대뇌혈관질환 △신경계질환 △악성신생물 △갑상선의장애 △간의질환 △만성신부전증 등이다.
단, 초진이 가능한 예외 항목도 뒀다. 소아 환자는 대면진료 이후에 비대면 진료(재진)를 원칙으로 하되, 휴일·야간에 한해 대면진료 기록이 없더라도 비대면 진료를 통한 의학적 상담은 가능하도록 했다. 초진은 환자가 대상환자 확인 방법에 따른 비대면 진료 대상자임을 의료기관에 알리면, 의료기관은 증명서 등 필요한 서류를 화상으로 확인해 비대면 진료를 실시하고 진료기록부에 내용을 기재한다. 섬·벽지 등 의료취약지 환자 및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등 거동불편자, 감염병 예방법 상 치료기간 중 타 의료기관에서 진료가 필요한 1~4급 감염병 확진 환자는 예외적으로 초진이 허용된다.
출처: 보건복지부
여전히 풀 숙제는 많지만, ‘만성질환자’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
한편, 현장에서는 제도 정착을 위해 진료 일정 조율과 환자 교육 등이 필요하지만 만성질환자 관리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내다봤다. 꾸준한 건강 관리가 핵심인 당뇨,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은 평소 생활습관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자신의 혈당과 이상수치 등을 적어서 병원을 방문하여 건강 추이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개인 맞춤형 진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매번 병원을 찾는 일은 만성질환자에게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다. 또 병원을 방문하기 전까지 건강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고, 환자 스스로 건강 관리를 꾸준히 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비대면 진료를 잘 활용한다면 만성질환자의 건강 관리에는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여전히 비대면 수가, 약 배송 문제 등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는 많지만 분명한 점은 비대면 진료가 만성질환자에게는 유용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