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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치료

하이닥은 한국망막변성협회 회장 유형곤 원장과 함께 망막변성으로 인한 실명 예방 문제뿐 아니라, 백세시대 건강하게 눈 건강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매주 소개합니다.

안과 전문의 유형곤 원장ㅣ출처: 하이닥안과 전문의 유형곤 원장ㅣ출처: 하이닥

흔히 눈 속을 우주와 비교하곤 합니다. 광활한 우주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작아 보이는 눈도 그 속에 우리 몸을 이루는 신경, 혈관, 분비샘, 심지어 근육까지 모든 종류의 세포가 있습니다. 따라서 백내장이나 망막 수술은 우주처럼 복잡한 눈 속에 생긴 병을 고치는 섬세한 작업입니다.

실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눈 수술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 대한 성찰도 같이 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거쳐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을 때, 수군을 포기해도 된다는 선조 임금의 교지를 받는다. 그러나 장군은 단호하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로 시작하는 장계를 올린다. 직전의 칠천량전투에서 조선 수군이 궤멸되었지만 아직 배 12척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들 배를 가지고 한 달 후 명량에서 역사에 새겨진 큰 승리를 하게 된다.

만약 그 12척의 배가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명량에서의 승리도 없었을 것이다. 진료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들 중에는 병이 이미 심하게 진행된 후에 병원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경우는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정말로 시력을 잃을 수 있었는데 이제라도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환자이다. 궤멸된 수군이 10여척에 불과한 전력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다면 수술도 성공할 기회가 아직 있는 것이다.

수 년 전 백내장 수술을 받았던 중년 여성이 눈이 무겁게 아프고 시력이 떨어져서 클리닉을 찾았다. 몇 달 전부터 증상이 나타났는데 최근 더 안보인다고 했다. 당시 머리가 세게 부딪히면서 눈 주위에 멍이 들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눈 검사를 해보니 인공수정체는 눈 뒤로 내려앉았고, 눈 속 뒤에 있어야 할 유리체는 인공수정체 앞으로 밀려나와 각막에 붙어 있었다. 눈동자의 충격으로 인공수정체를 지지하는 끈 조직이 끊어지면서 인공수정체 탈구가 발생한 것이다.

유리체 유착에 의한 각막 손상이 많이 진행되었고 안압 상승으로 시신경도 절반 이상 손상되어 있었다. 만약 인공수정체가 눈 속에서 움직이면서 망막이 찢어졌거나 각막과 시신경 손상이 더 심해졌더라면 수술도 못하고 실명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아직 배 12척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인공수정체의 위치는 바로잡고 유리체는 깨끗이 제거하여 시력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때때로 수술은 전쟁과 같고 외과 의사는 장수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려운 수술이라고 해서 포기할 수도 없고, 수술 중에도 못하겠다고 그만둘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직 남아있는 배 12척을 찾아서 어떻게든 눈을 살려야 한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환자도 의사도 마지막까지 포기하면 안된다.

글 = 유형곤 원장(한국망막변성협회 회장/하늘안과 망막센터장)

[한국망막변성협회 '유형곤의 시투게더(Seetogether, Sitogether)'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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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영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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