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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치료

호두까기는 호두를 넣고 손잡이를 눌러 깨뜨려서 알맹이만 꺼내도록 만든 연장이다. 이와 같은 호두까기의 원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병명이 있다. '호두까기복통'이 바로 그것. 호두까기복통의 정식 명칭은 '정중궁인대증후군'이다. 그러나 정식명칭이 너무 어렵고 생소하다 보니 환자뿐 아니라 의사에게도 낯설었다. 더군다나 복강 내 주요 장기가 몰려 있는 까닭에 다른 병과 헷갈리기 십상이고, 병 자체도 흔한 것이 아니어서 놓치는 경우가 많아 진단이 쉽지 않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이 계속된다면, 호두까기복통을 의심해 보자ㅣ출처: 게티이미지뱅크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이 계속된다면, 호두까기복통을 의심해 보자ㅣ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진단 어렵고 이름마저 생소한 ‘정중궁인대증후군’
정중궁인대증후군(Median arcuate ligament syndrome, MALS)은 복부 상부의 정중궁인대가 복강동맥을 아치 모양으로 가로지르면서 복강신경절을 눌러 통증이 생기는 병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왼쪽 콩팥 정맥이 두 동맥(복부 대동맥과 상장간막동맥) 사이에 끼어 압력이 올라가면서 콩팥 속 실핏줄이 터져 혈뇨와 옆구리 통증을 유발한다.

왼쪽 콩팥 정맥은 콩팥에서 걸러진 혈액을 대정맥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별문제 없지만 간혹 콩팥 정맥이 대동맥과 장동맥에 눌려 혈액이 잘 흐르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 콩팥에서 피가 잘 빠져나가지 못해 콩팥이 부어오르고 그로 인해 단백뇨, 혈뇨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여성은 골반통, 배뇨통을 호소하거나 남성의 경우 외음부의 혈관이 굵어지고 튀어나오는 정맥류와 연관되기도 한다.

정중궁인대증후군은 상장간막동맥이 대동맥에서 뻗어 나오는 위치 변화, 왼쪽 콩팥이 후방으로 처지는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너무 끼이면서 압박을 받게 된다. 젊고 마른 사람에서 이런 구조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마른 체형일 경우 두 동맥 사이에 완충 역할을 하는 내장지방이 적어 더욱 심한 압박을 받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정중궁인대증후군은 횡격막의 움직임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는데, 호흡과 자세 변화에 따라 통증의 강도가 변하는 특징이 있다. 다양한 발병 가능성과 특징에도 불구하고 정중궁인대증후군은 정확한 진단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원인불명 복통으로 병원 이곳저곳을 헤매는 환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최근 반복적으로 극심한 복통을 일으키는데도 진단이 어려운 '정중궁인대증후군'을 발병 기전에 따라 보다 직관적인 명칭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나왔다.


삼성서울병원 연구팀, 새 명칭 및 감별진단 기준 제시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풍렬·김지은 교수와 건강의학본부 강미라 교수 연구팀은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 국제학술지(Journal of Neurogastroenterology and Motility) 최근 호에 정중궁인대증후군의 ‘새 명칭’과 함께 ‘감별진단 기준’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정중궁인대가 복강동맥을 감싼 모양이 호두를 누르는 호두까기와 비슷하다는 면에서 정중궁인대증후군을 '호두까기복통(Nutcracker Ganglion Abdominal Pain Syndrome)’으로 부르자고 했다. 질환의 발병 특징을 병명에 담아 환자나 의료진이 병을 쉽게 인지하고, 기억하기 편하게 하기 위함이다. 연구진은 병명을 바꾸면, 병의 인지도 개선뿐 아니라 진단도 수월해질 거라고 판단했다.

또한 '호두까기복통'을 확진한 표준 진단법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새 감별진단법도 제시했다. 연구팀은 임상적 특징과 영상검사에서 나타난 생리적 특징을 종합하여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원인불명 복통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에게 새 진단 기준을 적용하였고, 의심 정도에 따라 그룹을 분류했다. 담낭·담관염, 화농성 위염, 췌장염, 복막염 등도 복통을 유발하지만 호두까기복통과는 양상이 달랐다.
연구팀은 응급실 방문 환자들 중 호두까기복통이 매우 의심되는 환자에게 혈관조영 CT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호두까기복통으로 최종 진단하여 감별진단법의 유효성을 입증했다.
이를 바탕으로 전향적 연구를 준비 중이라고 밝힌 연구팀은 "원인 질환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복통이 지속되는 경우, 식이나 배변과 관계없이 통증이 발생하는 경우 등 호두까기복통을 의심해 봐야 한다"면서 "드문 질환이긴 하지만 복통 원인이 확실하지 않다면 논문에서 제시한 감별진단 기준을 참고하여 호두까기복통인지 확인이 꼭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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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리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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