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찰스 3세의 삶’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앤드슨은 영국의 찰스 왕은 어릴 때부터 함께 해 온 애착 곰 인형이 있다고 밝혔다. 찰스 왕은 가장 신임하는 마이클 포셋이라는 하인에게 인형을 지키라고 했으며, 왕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이 인형을 책임지고 관리했다고 전했다. 인형 수선이 필요할 때는 지정된 보모만이 수선할 수 있었다. 찰스 왕은 인형이 수선을 받을 때면, 자식이 큰 수술을 받는 것처럼 행동했을 정도로 애정을 듬뿍 주었다고 한다. 73세의 찰스 왕은 왜 어린 시절 애착 인형에 여전히 집착하는 걸까.
성인이 되어서도 애착 인형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ㅣ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도대체 애착 인형이 뭐길래, 어른이 되어도 놓지 못할까?
애착 인형, 아이들이 부모와의 애착 관계 대신 잠시나마 따뜻한 포근함과 편안한 마음을 얻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인형을 의미한다. 자기 몸집만 한 큰 인형을 한시도 품에서 놓지 않고 항상 같이 다니며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소중한 애착 인형과 떨어지게 되면 불안해져, 떨어지지 않으려 고집을 부리거나 울기도 한다. 말 그대로 애착인 셈.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애착 인형을 가진 경우가 있다.
애착(Attachment)이란,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존 볼비가 처음으로 제안한 개념이다. 인생 초기에 가까운 사람에게 강한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애착 형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유아와 양육자 사이, 초기 관계가 질적으로 얼마나 훌륭하냐'이다. 생후 1년 동안 양육자와 애착 관계를 잘 형성한 유아는 세상을 탐색하고자 하는 안전기지로 애착 대상을 이용하며, 애착이 형성된 특정한 대상과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그 대상을 통해 안정감을 찾으려는 강한 욕구를 지닌다.
부모와의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는 신체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또래 아이들보다 면역력도 강하다.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편안함과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적극적인 태도를 지닌 아이로 성장한다.
아이가 부모만큼이나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을 애착물이라고 한다. 그 대상이 인형일 경우 '애착 인형'이라고 하는데, 보통 부모와의 애착이 충분히 형성된 생후 12개월 이후부터 만들어 주는 게 좋다.
아이들에게 애착 인형은 또 다른 부모인 셈이다. 부모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분리불안이라고 한다. 분리불안을 잠재워주는 것이 애착 인형의 역할이다.
성인이 되어도 애착 인형에 집착하는 이유? 불안하니까!
아이들은 애착 인형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기도 하고, 애착 인형과 상호작용하며 사회성을 기르게 된다. 보통 36개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애착 물건에 대한 집착이 서서히 사라진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도 애착 물건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 장난감을 계속 수집하는 사람들을 '키즈(Kids)'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인 '키덜트(Kidult)라고 부른다. 이들은 어릴 적 장난감뿐 아니라 애착 베개, 애착 인형 등을 애지중지한다. 어린 시절 물건을 어른이 되어서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심리적 위안에 있다.
어른들은 수집, 즐거움, 몰입, 현실도피 등을 목적으로 어릴 적 장난감을 모은다. 단순히 예쁘고 귀여운 것을 모으는 게 좋아서 자기만족으로 사는 경우도 있지만, 어린 시절 물건을 모으는 데는 타인이나 사회에서 얻을 수 없는 심리적 위안이 가장 큰 이유다. 영유아기에 애착형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을 믿지 못하거나, 분리불안 등이 나타난다. 심리적 안정감을 찾기 위해 '애착 인형'과 같은 대상을 만든다.
애착 인형이 심리적 불안을 잠재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브리스틀대 연구팀은 18~36세 성인 129명을 대상으로 쿠션이 불안 완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험했다. 그 결과 쿠션을 사용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불안감과 신체 반응 지수가 절반 넘게 감소했다. 즉,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애착 인형이나 명상 등이 안정 효과를 준다는 것.
유아기 불안정 애착이 대인관계 어려움 가져와…
하이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사 김윤석 원장(서울맑은정신건강의학과의원)은 "어린 시절 온전한 인격체로써 독립을 하는 시기에 어머니 대신 잠시 애착 형성을 하는 물건이 애착 물건"이며 "어머니로부터 건강하게 독립하게 되면 애착 물건도 자연스럽게 덜 찾는다”라고 밝혔다. 덧붙여 정신 분석학적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애착 물건에 집착하는 것은 큰 문제는 아니지만, 애착 물건으로 인하여 직장 생활 및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정신분석적 면담을 받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애착 형성에 실패하거나 안정되지 못한 애착을 형성한 사람들은 정서적 안정은 물론 대인관계 형성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애착 관계가 불안정한 사람은 직장도 한 곳에 오래 다니지 못하고 계속 옮겨 다니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는 등 늘 가슴 한 편에 불안을 지니고 있는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애착 물건을 만들고, 심리적 위안을 가져오고자 한다.
애착 인형 지닌 어른, 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애착 물건으로 자기 계발도 가능
성인에게 있어 '애착 물건'은 심리적 위안뿐 아니라 자기계발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장난감을 활용한 놀이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배움의 수단이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과정에서 감정적, 물리적, 사회적, 인지적으로 성장한다.
어른들의 인형놀이를 연구한 핀란드 탐페레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어른 역시 어린이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인형을 갖고 논다. 다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인형 사진을 타인과 공유하거나 기성품 인형을 여기저기 바꿔 자신의 취향대로 재창조하는 등 장난감을 아이들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핀란드 투르쿠대 인문학부 연구원의 논문에 따르면, 인형은 어른들이 생산적인 자기계발을 하는 수단이다. 논문은 '브라이스(Blythe) 인형'을 가지고 노는 어른을 대상으로, 그들이 자신의 놀이에 인형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조사했다. 브라이스 인형은 약 28cm의 사람 형태 인형으로, 헤어와 메이크업, 홍채 색, 의복 등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 조사 결과 어른들은 인형 놀이를 매개로 새로운 취미생활에 입문하거나 이전에 없던 능력을 기르거나, 새로운 사회관계를 맺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애착 물건을 지니며, 마음의 불안을 잠재우는 등의 행동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애착 인형이나 베개가 닳아서 헤질 때까지 버리지 않거나, 방 하나를 장난감으로 꽉 채울 정도로 심리적 자립을 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과도한 집착은 화를 부른다. 애착 베개가 없을 때 다른 베개를 베고 잘 수 있는 정도의 애착을 유지한다면, 애착 베개는 '힐링의 수단'으로써 제대로 역할 할 수 있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관리할 본인만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김윤석 원장 (서울맑은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