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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한편에 꽂혀 있는 각종 토익 공부 책과 자격증 서적들, ‘나는 할 수 있다’ 반듯하게 붙어 있는 포스트잇, 면접과 시험 스케줄이 성실하게 적혀 있는 탁상 달력. 하지만 그 달력은 다음 달로 넘어가지 못한 채 2개월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각종 인스턴트 봉지 껍데기들과 생수통 등이 발 디딜 틈이 없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여기에 젊은 청년 한 명이 이불 속에서 쥐 죽은 듯이 웅크리고 누워 있다.


2030 청년 고독사 문제가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유년기에 학교 사회 시간에 선생님께서 '글로벌', '핵가족화', '고성장' 등의 단어를 설명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런 단어들을 배우고 익혀야 할 정도였습니다만 지금은 예견된 미래를 넘어서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글로벌을 뛰어넘어 ‘메타 버스’의 세상이 오고 있고 고성장 이후에 다 같이 잘 살아가는 제도의 일환인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가 되고 있으며 핵가족화를 넘어 ‘초핵가족화’ 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장년층의 독거사는 비교적 익숙해져 있고 현재도 독거사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20~30대의 청년층이 독거사 한다면?' 이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종종 원룸이나 고시원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홀로 외로이 고독사를 하는 젊은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아니 지금이라도 들여다봐야 하는 불편한 진실 중의 하나인 청년 고독사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쓰레기 집 더미 속 청년들


단순히 정리 정돈이 안된다의 수준이 아닌 발 디딜 틈 없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생활하다가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견 그 사람이 게을러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지의 문제로 해결되지 않는 '우울증'이나 '저장 강박증'이 심화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울증
청년들은 '젊음'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마라톤을 시작하였으나 기대와 달리 수차례의 좌절을 겪고 사회의 높은 벽을 경험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외부의 혹독함에서 문제를 발견하기 보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습니다.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규정짓고 단순히 먹고 자고 싸는 것 이외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여깁니다. 손도 까딱할 에너지 없이 그렇게 매일을 6평 남짓한 공간에서 파묻혀 살다 보니 외출은커녕 쓰레기를 정리하거나 버릴 힘도 없어집니다.


한국 청년들의 마음에는 여유가 사라지고 있다


저장강박증
에너지가 바닥이 되어 쓰레기를 치울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저장 강박증’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손이 닿았던 물건들을 버리게 되면 마치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고 누군가가 잘못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생각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쉴 새 없이 몰려오는 불안감에 두려움이 커져서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차곡차곡 쓰레기를 쌓아갑니다. 혹여라도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고 집을 청소하러 올까 봐 방문하지 못하게 매번 만남을 미루며 살아갑니다.


#청년 고독사의 키워드


능력주의 시대
과거 수백 년 전에는 종교, 정해진 계급, 운명론 등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하였습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이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었다고 생각하고 살다 보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잘 풀리든 그렇지 않든 나의 능력과는 무관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부터 무한한 자유와 더불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책임은 오롯이 개인이 사고하고 행동한 결과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내가 생각한 대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죠. 여러 번 좌절을 겪고 회복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 비하여 청년층은 경험이 짧습니다. 따라서 본인의 믿음과 좌절의 괴리를 더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당장은 잘 안되는 시기가 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좌절로부터 감정적 거리를 두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고립감
지금의 2030세대는 초핵가족화 세대로 과거에 비하여 어린 시절 친척들과의 교류도 적고 외동으로 자라는 빈도도 높습니다. 과거 아버지 세대가 지인을 믿고 빚보증을 잘못 서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서 친구의 대소사를 도왔다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입니다. 나의 시간이 가장 중요해지고 간섭받기 싫고 내가 원하는 것만 선택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럴수록 사회적 관점에서 효율성은 올라갈지 모르겠지만 외로움도 필연적으로 따라옵니다.


나의 감정적 정서를 채워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으려면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그것 또한 부담이 됩니다. 외로움을 넘어선 고립감을 당연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목표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이에 잃어버릴 수 있는 정서적인 유대감을 채우기 위해 종종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지인들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아무런 기대 없이 누군가에게 연락이 온다면 상대방 또한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거니까요.

젊으니까 괜찮아
영국의 유명 문학 작가인 윌리엄 서머셋 모옴(W. Somerset Maugham)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젊음이 행복이라는 것은, 그것을 잃은 사람들의 착각이다. 젊은이들은 높은 이상으로 인해 자신이 비참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고 현실과 마주칠 때마다 멍들고 상처 입는다'. '젊으니까 괜찮아'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기성세대입니다.

수십 년간 산전수전을 다 겪고 살아본 사람의 시각으로 본다면 반짝이는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갔을 때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무기력하고 나태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설익고 힘든 시기를 견뎌내어 당당하게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 것만으로도 기성세대들은 박수를 받을만합니다. 하지만 각자의 나이에 했던 고민과 어려움은 그 시기에 인생에서 가장 무겁고 힘든 일들 일수 있습니다. 청년들도 어렵고 힘들다고 한숨을 쉴 때 곁에서 토닥여주세요. 힘들 수 있으니 잠시 쉬어가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하루는 매일 다를 바 없이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사회 문화는 굉장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청년 고독사는 사회 적응의 실패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만연해왔습니다. 청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앞으로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 현상입니다. 기존의 시각으로 변화를 무시하고 덮어버리기 보다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사회의 문제로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김윤석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Smart tag : 불안장애 우울병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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