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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시라이프

오늘 문득 30대 취업 준비생으로부터 정관 수술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정관 수술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도록 ‘불임’ 상태로 만드는 수술이다. 남성의 대표적인 피임 방법으로 10~20분 내외로 소요되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다. 하지만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다시 정관 복원 수술을 하려면 까다로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세 수술도구를 이용하여 머리카락보다 가는 수술 바늘과 봉합사로 정관을 연결하는, 고도의 집중과 술기가 필요한 수술이다. 무엇보다 10%에 가까운 복원 실패율을 고려하면 섣불리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오죽하면 결혼도 하지 않은 청년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저 머나먼 세렝게티의 초원에서도 초원의 풀이 부족하면 누와 얼룩말이 새끼를 덜 낳는 것처럼 현재의 대한민국 아니 벌써 십수 년 전부터 대한민국은 아이 낳고 키우기가 힘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는 남성고민하는 남성

대한민국은 현재 OECD 가입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이고 이에 따른 고령화 속도도 빠른 상황이다. 이는 단순히 수치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실제 진료실에서도 20대이거나 아직 미혼인 남성들로부터 임신을 원치 않는다며 정관 수술에 대한 문의를 심심찮게 받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매번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돌려보내기를 벌써 몇 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것은 내가 전공의 시절이던 15년 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진료실 풍경이다.

아이 낳기를 꺼리는 풍토 속에서 출산 장려 정책과 임산부 배려 등 출산율을 높이려는 다양한 시도가 전 국가적으로 진행 중이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출산율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청년들이 현실을 내세워 아이를 포기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출산을 장려한답시고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처럼 인식하는 듯한 이상한 정책들을 보면서 사회에 대한 답답한 갈증이 밀려온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걱정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 세렝게티의 초원에 풀이 없다면 풀을 심고 물을 주고, 아니면 풀이 무성한 다른 곳으로 누와 얼룩말 무리를 이동시켜서라도 새끼를 낳을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새끼를 낳으면 어느 정도 클 때까지만 겨우 살 수 있을 정도의 사료만 주겠다는 정책은 이제 그만 거둬들였으면 한다.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다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소득 격차를 줄이고 기본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도 든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최저 임금을 높여서 자기의 꿈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30대 취준생이 희망을 잃고 연애, 결혼, 출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삼포세대가 되지 않기를... 그래서 진료실에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하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글 = 하이닥 상담의사 윤장호 (비뇨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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