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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치료

나는 정신과 의사다. 여태까지 수만 명과 상담을 해 왔다.

수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아본 적은 없다. 오히려 매일 아프다든지, 화가 난다든지, 죽고 싶거나 혹은 죽이고 싶다거나 살고 싶지 않다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하소연과 짜증을 들어가며 30년을 지내왔다. 치료의 의욕보다는 나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먼저 들 때가 많다.

건강한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은 하루 종일, 심지어는 꿈 속에서도 계속된다. 하필 왜 이런 직업을 택했을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택한 소명이니만큼 하늘을 원망하는 죄를 짓고 싶지는 않다.

“왜 그래야 하는지 수백 번 물어봐도 날 위해서는 아니다. 널 위해서다.”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의 스타의 감정과, 환자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해주지 못할 때의 의사의 압박감은 유사하다. 대답을 줄 수 있다고 했으면, 대답을 줘야지. 그래야 전문가이고 프로 아닌가?

만약 그가 나를 만났으면 나는 어떤 답을, 어떤 해결책을 주었을까? 막막할 뿐이다.

밤하늘의 유성밤하늘의 유성

그가 떠난 이곳은, ‘성공 우울증’ 부르는 세상

그는 명백한 유서를 지인에게 전달한 후 조차 애써 웃음지으며 공연을 마쳤고, 그로부터 8일 뒤에 생을 마쳤다. 누가 막을 수 있었을까? 11일 전에 받은 유서를 늦게 전달한 친구? 당분간만이라도 쉬라고 강요하지 못한 부모님과 가족? 지친 것을 알면서도 계속 일을 시킨 소속사? 아니면 의사의 잘못일까? 입원 치료를 시킬 것을 가족에게 경고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문제이다. 하지만 의사의 이런 권고가 통할 수 있는 사회일까?

‘성공 우울증(success depression)’이라는 것이 있다. 성공했는데, 무슨 우울증이 생기느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실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성공했을 때에도 우울증이 온다.

우리는 언제 우울증에 빠질까?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때?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 그건 거짓말이다. 인생은 누구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오히려 올라간 상태에서 내려가면 안 된다는 압박감 지금보다 더 이상 내려가면 끝장이라는 압박감이 문제이다.

‘그래 이 정도면 잘 한 거야. 어려운 것 잘 참아내고 인내하고 견딜 만큼 견뎠어. 대견해. 이 정도면 되었어. 이젠 내려오자’고 스스로를 달래 보지만 내려오지 못하고 자신이 쌓아온 공든 탑을 무너뜨리거나 자신이 매달린 줄을 놓게 된다. 박수칠 때 내려오고 싶기 때문이다. 영광의 순간을 마지막 순간으로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많은 선배 연예인들이 과거의 영화와는 달리 힘겹게 연명해 가고 있는 것을 알기에, 이러한 충동은 아직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아이돌에겐 흔한 심리일 수 있다.

빛나던 청춘, 종현이를 보내며

종현 군은 16세에 발탁되어 아이돌 그룹 생활을 시작했다. 한창 사춘기 나이에 큰 무대로 나아간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겪은 것은 기계적 훈련과 스케줄에 속박된 삶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연예인들에게 법적 노동시간이 정해져 있는지, 휴가가 보장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자살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에 공동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제발 죽지 말아달라" 는 설득은 통하지 않는다. 죽고 싶지 않고, 살고 싶은 세상이어야 한다.

기성세대는 인기는 곧 돈이며,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돈을 추구한 젊은이가 아니다. 그는 특별했고, 똑똑하고, 리더십이 강하고, 생각이 무척이나 성숙하고 깊은, 진정 미래가 빛나는(Shining) 젊은이였다.

사랑하는 가족과 팬들의 곁을 떠난 종현 군에게 전하고 싶다. "내일이면 너의 발인이구나.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수고했고 고생했어."

아쉽게 널 보내는, 못난 기성세대 정신과 의사로부터.

<글 = 하이닥 의학기자 최성환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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