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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치료

필자가 처음으로 주치의를 맡았던 환자는 15년 전 60대의 조용한 할머니였다. 뇌졸중으로 인한 좌측 편마비로 발목조차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매우 우울해 하셨던 분이다. 그러나 다행히 손가락 하나정도는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신경과에서 전과 온 후 한 달동안 치료받으면서도 호전되지 않아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회진 중에 별 기대 없이 할머니께 발목을 움직여보라고 했는데, 드라마틱하게 전혀 움직여지지 않던 발목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할머니도 놀라고 나도 놀라 기쁜 마음에 병동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쳤다.

“할머니 발목이 움직인다!”

나의 첫 환자가 꾸준한 재활치료로 증세가 좋아졌으니 스스로도 자신감이 생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론 퇴원한 환자들도 병원을 잘 안 오고, 오더라도 보호자만 와서 약만 처방받거나, 퇴원 후엔 아예 연락이 끊겨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꾸준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데 환자가 병원에 오질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그 후 ‘주치의가 되면 적어도 내 환자들에겐 한 달에 한번씩 안부전화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할머니의손할머니의손

그래서 시작한 것이 안부전화 리스트를 만드는 일이었다. 환자 퇴원 시 기록지와 검사지를 모두 뽑아 파일로 만들어 보관하고 한명씩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퇴원 후 그 할머니께 전화를 자주 했었는데 혼자 지내셔서 밥도 제대로 못 챙겨드시고 집에 층계가 많아 나가는 것은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고 하셨다. 그 후로 난 당직을 서는 토요일이면 환자들에게 전화라도 걸어 안부도 묻고 병원에 오셔서 치료 받기를 권해드리는데 3~4시간을 투자했다.

내 병원을 차린 지금, 그때의 정성으로 환자를 보리라 마음먹어 보지만 이젠 돈도 벌어야 하고 병도 치료해야 하는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생각만큼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환자와 의사는 어머니와 자식, 선생님과 제자, 남편과 아내와 같은 끈끈한 유대관계가 있는 것 같다. 서로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이 더 들고 애착이 가는 사이 말이다.

오늘은 유난히 내 첫 환자가 돼주신 할머니가 뵙고 싶어진다. 내게 처음으로 치료의 기쁨을 주셨던 할머니. 발목이 움직인다며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할머니의 밝은 미소는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 미소를 떠올리며 오늘도 환자의 치료에 최선을 다해보자 다짐해본다.

지안재활의학과 김주현 원장 (재활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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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HiDoc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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