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질환·치료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어느 날 딸아이가 반에서 옮아온 머릿니와 수개월 동안 사투를 벌였던 사실을.

이와 같은 고백을 감행하게 된 것은 어제 외신을 검색하다 헬스데이 뉴스에 난 기사를 보고서다. “Dealing With Head Lice” 기사 옆에 난 큼지막한 ‘이(Lice)’ 사진이 없었다면 아마 ‘쌀(Rice)’ 건강하게 먹는 법쯤으로 알고 그냥 넘길 뻔했다!

미국 로욜라대 헬스시스템의 소아과전문의 한나 차우-존슨(Hannah Chow-Johnson) 박사는 최근 헬스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머릿니가 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사실 ‘이’란 녀석들은 깨끗하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좋아한다. 머리카락이 더러운 사람들한테만 이가 잘 생긴다는 것은 잘못된 사실이다”고 위무하며 내게 이런 고백담을 쓰는 용기를 주었다.

그녀 또한 자신의 클리닉에서 이가 옮은 어린이 환자들을 치료해왔지만 비로서 자신의 딸들이 이를 옮겨 오기 전까지는 이란 녀석들의 놀라운 번식력과 생존력을 간과했었다고.
기자인 나도 그랬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엄마들로부터 요새 이가 유행이니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도 ‘이는 잘 안씻는 아이들한테나 생기는 거지, 설마 내 딸아이가…’ 하며 흘려 들었다.

머릿니머릿니

어느 날 아이가 머리를 유난히 벅벅 긁어대는 모습을 보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밝은 곳으로 데려가 머리 속을 살펴보았다. 쌀알 반만한 새카만 것이 머리카락 사이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모습을 보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빗으로 박박 머리를 빗어도 보고(참빗질을 하기 전 머리를 짧게 자를 것. 긴머리를 참빗질 하는 건 너무 아프다), 약국에서 이를 박멸해준다는 샴푸도 사서 감아보고, 뜨거운 열로 머리를 지지는 디지털펌도 시켜 주었다. 열도 열이지만 유화제니, 중화제니 하는 독한 퍼머 약들을 그 쬐끄만 벌레들이 못견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는 나의 이런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고 꿋꿋히 살아남았다.

갖은 수단과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자 물리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밤이면 밤마다 스탠드를 아이 머리 위에 밝혀놓고, 무슨 중요한 수술을 하는 의사처럼 하나하나 손으로 이와 서캐(이의 알)를 잡았다. 한번 시작하면 허리 한번 펴 보지도 못하고 두세 시간은 꼬박 했던 것 같다. 서캐는 목, 귀 뒤쪽 두피 근처에 주로 알을 낳는다. 특히 얇은 솜털 머리카락에 촘촘히 붙어있기 때문에 손톱으로 머리카락을 훑어내듯이 떼어 내야 한다.
아이 머리에서 잡은 서캐와 이의 잔해가 물티슈 위에 검은깨를 흩뿌려 놓은 것처럼 빼곡하게 찰 때까지 사투는 계속됐다. 그와 동시에 나의 요통도 점차 심해져 갔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나처럼 주변에 말도 못하고 이와의 전쟁을 벌였던 엄마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란 녀석은 유행하면 시작하면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때문이다.

이를 잡으면서 아이가 머리를 자주 긁을 때 한번 유심히 살펴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차우-존슨 박사 또한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아이의 머리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초기진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아울러 아이 머리의 이만 잡을 것이 아니라 집에 있는 베개, 소파 쿠션 등과 같은 침구류도 모두 모두 뜨거운 물에 세탁해야 하고, 삶을 수 없는 것들은 플라스틱 봉지에 넣어 격리시켜야 한다고 차우-존슨 박사는 강조했다.

밤마다 졸음을 견뎌가며 이를 잡은 지 두 달쯤 지나, 아는 사람으로부터 머릿니에 좋다는 수입 약품을 추천받았다. 몇 만원 했던 기억이 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으로 주문해 뿌려 보았다. 설명서대로 사용하고 난 뒤 일주일쯤 지나 한번 더 해주고 나니 이가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혹시 몰라 당분간은 이가 있는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 뒤 이에 노이로제가 생겨, 자다가도 문득 아이의 머리카락을 들쳐보곤 했었다.

끝으로 차우-존슨 박사가 기사에서 밝힌 팁을 하나 소개한다. 망고, 로즈마리, 티트리 오일은 머릿니가 싫어하는 것들이라고. 따라서 이런 향이 첨가돼 있는 헤어 제품을 사용하면 머릿니의 침입을 막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일찍 발견할수록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어요” 차우-존슨 박사의 말처럼 머릿니는 초기에 잡아야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머릿니가 다시 창궐하고 있는 요즘, 수시로 아이의 머리카락을 들춰보는 엄마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 공유하기

    주소 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ctrl + v 를 눌러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하세요.

    확인
    닫기
이현주 의학전문기자 | hidoceditor@mcircle.biz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