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조금 긴 내용이지만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곘습니다.
저는 스물세 살 대학생(여)이고 현재 프로작 20mg을 복용중에 있습니다.
본가에서 다니는 정신과를 거의 두 달에 한번밖에 갈 수가 없는데(학교 근처에서 자취중입니다), 제가 지금 이수해야 할 연구실 인턴 기간이 8월 말까지인지라 지금 당장 의사선생님을 뵐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네이버 서치 중 환자들에게 좋은 답변을 남기신 선생님을 알게 되어 질문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제가 학업으로부터의 우울증과 섭식 장애가 생긴 것은 작년 가을/겨울(9월)부터입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2월)에 프로작을 20mg씩 처음 처방받게 되었습니다.
제게 나타난 섭식 장애의 유형은 끊임없이 뭔가를 씹지 않으면 몹시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뭐 이런 종류였습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음에도 좋은 대학에 오게 되어 부모님의 기대는 크고, 제가 제 자신에 대해 내린 평가도 그런대로 높았는데 제 전공인 기계공학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이 길이 제 길이 아닌것을 느꼈습니다. 이해는 둘째치고 집중조차 되지 않았고 수업 내용을 통째로 놓쳐버리는 것이 하루 이틀이 되었다가 점점 반복되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한 자괴감과 죄책감은 엄청났고 점점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되더군요.
그렇게 매일 혼자 자취방에 앉아 이것저것 홀린듯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보니 여름때만해도 170/49kg정도로 항상 관리하고 유지하던 체중이 9,10,11,12월을 지나자 거의 57kg을 넘게 되었습니다. 우울하고 불안해서 먹었더니 살이 쪄서 더 우울해졌다, 악순환의 고리였습니다. 이 나이대 여자라면 모두 그렇겠지만, 특히나 저는 외견을 꾸미는 데 상당히 관심 있는 쪽으로 살이 찌자 걷잡을 수 없이 무기력해지고 어차피 이해하지도 못할 수업,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잘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말고사까지 학점은 어떻게든 받아 메꿀 수 있었지만 한 학기 내내 거의 모든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절망감은 엄청났습니다. 하루종일 뭔갈 씹고 삼키니 매일매일 두통도 엄청났고 월경 주기도 네 달을 건너 뛰거나 갑자기 새까만 피가 울컥 나오거나 하는 일도 생겼습니다(산부인과에서 초음파를 받아 봤지만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냥 공부하지 않게 된 제 자신이 너무 쓸모없게 느껴진 나머지 내가 나무였으면, 벽이었으면.. 아무 생각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만 하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는 그저 밝고 걱정 없는 친구로 인식되던 터라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구요.
그리고 본가에 내려와 겨울을 하염없이 보내다가 정신과 상담을 결심하고 처방받은 푸로작 20mg를 꾸준히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봄~여름 동안 우울한 것도 괜찮아지고, 학업에 대한 제 흥미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이건 약이 해결해주는 문제가 아니므로 저는 대체로 전부 괜찮아졌다고 느꼈습니다. 다시 영화나 책 읽는 일도 재미있어지고, 체중도 49kg정도로 다시 돌아왔구요.
그런데 방학이 되어 연구실을 다니고 항상 혼자 지내다 보니 무리에 어울려 즐겁게 생활하던 학기중의 생활과 비교가 되서인지 급격하게 외로워졌고, 또 관심사도 아닌 전공을 연구실 때문에 계속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또다시 우울감과 불안증이 도졌습니다.
작년만큼 심한 상태는 아니지만 제가 느끼기에 조금 위험한? 자칫하다가 또다시 아플 지도 모르는 상태처럼 느껴집니다.
악몽을 꿔도 살이 찌는 악몽을 주로 꾸는 만큼 체중에 대한 제 집착은 평균 이상인데, (굶지는 않지만 식단이 바나나와 호밀빵이 아니면 불안을 느끼는 정도) 지난 주에 이것저것 먹으러 다니다 보니 2kg정도 찐 것 같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제겐 마치 20kg로 느껴집니다.
이번 가을에 또다시 아프게 된다면, 다시 우울증이 생기고 살이 찌게 된다면 삶을 아예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들으면 미친 소리라 하겠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위에 적진 않았는데 스무 살에도 우울증이 한 번 있었는데, 그 때나 작년이나 너무 괴로운 기억들 뿐이라 다시 그것들을 겪을 바엔 사라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됩니다.
남들이 보기엔 우울증은 상상할 수도 없는, 예쁜 옷을 좋아하는 평범한 여대생인데, 내면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는 일은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생각해 본 적도 없네요.
이쯤 되면 제가 우울에 안착하려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울을 핑계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열심히 살지 않는 것에 합리화를 하는 것이 아닌지요. 대학원에 진학할 것이 아니라면 지금 스펙도 쌓고 취업 준비에 열을 올려야 할 때인데, 아무 것도 할 자신도 없고 의욕도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네요.
이런 상황에 대한 조언과(막연함에 사과드립니다) 프로작 용량을 멋대로 40mg로 늘려 복용해도 되는지 여쭤보고자 질문 드립니다.
국내 자료나 경험담엔 한계가 있어 구글에서 찾아보니 20->40 점차 늘리는 거라면 괜찮다는 의견이 대다수긴 하지만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야 할 것 같아서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