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질환·치료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유서는 보통 가족에게 보내지지만, 마음이 우울한 초기에는 대부분 가까운 친구들에게 먼저 타진을 하게 된다.

생명존중캠페인생명존중캠페인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

사랑하는 OO아 내가 이제까지 서운하게 했던 점이 있거나 무슨 감정 같은 것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잊어주길 바래. 부탁이야. 너 나 잊지 마. 항상 나 생각해야 돼. 이건 만약에 인데, 있지? 내가 어디 가더라도 나 잊지 마. 아참, 너와 찍은 사진이 없구나. 우리 오늘 사진이나 찍을래? 어 그려, 내가 어디 가면, 우리 1학년 때 수학여행 때 찍은 사진 보면 돼. 답장은 보내고 싶으면 보내고 보내기 싫으면 보내지 마.

내가 이 좋은 세상에 왜 이렇게 허무하게 가야 되나? 한때는 꿈도 참 컸었는데, 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인간이 아닌데, 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인간이 아닌데, 이건 너무 허무하잖아. 이건 너무 허무해. 내가 이 좋은 세상에 왜 이렇게 가야 되나? 왜?

미안해.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몰라서....나는 이렇게 살려고 했던 게 아니어서...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꿈은 그저 꿈일 뿐이예요. 돈을 벌어야지. 그래야 내가 사니깐...내 눈은 고장이 나서 눈물 밖에 나질 않고, 내 머리는 쓰레기로 가득 차서 온통 지저분하고...내가...

자녀에게서 온 메시지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아빠, 매일 공부는 안 하고 화만 내는 제가 걱정되셨죠? 죄송해요. 엄마, 친구 데려온답시고 먹을 것 내달라고 보채던 제가 바보스러웠죠? 죄송해요. 형, 매일 내가 얄밉게 굴고 짜증나게 했지?

미안하지만, 내가 그런 이유는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앞에서 밝혔으니 전 이제 여한이 없어요. 저는 원래 제가 진실을 말해서 우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지만, 제가 진실을 말해서 억울함과 우리가족 간의 오해와 다툼이 없어진 대신, 제 인생 아니 제 모든 것들을 포기했네요. 더 이상 가족들을 못 본다는 생각에 슬프지만, 저는 오히려 그간의 오해가 다 풀려서 후련하기도 해요. 우리가족들, 제가 이제 앞으로 없어도 제 걱정 없이 앞으로 잘 살아가기를 빌게요.

저의 가족들이 행복하다면 저도 분명 행복할 거예요.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우리는 한 곳에서 다시 만날 거예요. 아마도 저는 좋은 곳은 못갈 거 같지만 우리가족들은 꼭 좋은 곳을 갔으면 좋겠네요.

엄마 아빠께. 엄마 아빠! 죄송해요. 먼저 가서 죄송해요. 너무 힘들어서 이 길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엄마 아빠는 제 생각하면서 잘 살아주세요. 불효자식이란 거 잘 아는데, 더 이상 부담 없잖아요. 다음 세상에선 좋은 딸로 태어날께요. 사랑해요 죄송해요. 키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P.S. 아빠! 더 이상 짐 안 되게 제가 선택한 방법이니까 너무 미워 마세요.

아빠, 엄마에게서 온 메시지

왜 살고 싶은 마음이 없겠나? 너희들 웃는 모습 보고 힘내지만, 웃지 못하는 너희 아빠 힘들게 살았건만, 결과가 죽음뿐이구나. 사랑하는 내 마누라 내 자식들 어찌 살아갈꼬? 살고 싶다면...그렇지만 아빠만 힘들었다. ○○아, 아빠 이렇게 죽어야 하냐. ○○엄마 사랑했어. 살고 싶어라.

엄마 때문에 너에게 어떠한 불이익이 닥치더라도 남자답게 격파하고 나가라. 너무 놀라지 말고 침착하길 바래. 이렇게 간다고 너무 소문나면 OO, OO이 장래에도 지장 많을 듯 하니, 조용조용 처리해 주길 바래. 너희들한테 엄마로써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참고 애를 썼는데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통상적인 대화 같아 보일지라도 메시지 속에는 항상 다음과 같은 단어가 들어있게 마련이다.

사랑한다, 서운하다, 잊어라 혹은 잊지 마라, 허무, 꿈, 세상, 미안함, 삶, 돈, 눈물, 쓰레기, 죄송함, 바보, 여한이 없음, 진실, 행복, 오해, 다툼, 포기, 가족, 슬픔, 후련함, 재회의 만남, 좋은 곳, 새로 태어남, 부담, 감사. 결과, 힘, 책임, 애를 씀, 마음대로 안 됨... 등의 핵심단어인 키워드들이 발견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의외로 그 중에서도 사랑, 행복, 꿈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이 훨씬 더 많이 자주 등장한다. 완벽한 좌절과 포기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희망을 품고 있다는 증거들인가?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끈을 놓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내 친구한테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맞을까? 나도 그러하니 너도 같이 가자고 해야 할까?

우리는 남이 내 마음을 이해하고 나를 설득해 주기만 바랐지, 진짜 목숨 걸고 친구나 가족을 구하기 위해 진심으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초조해 본 적이 있는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누군가 전문가 같은 사람에게 이러한 운명 같은 현실 상황을 떠넘기거나 남이 처리해 주길 바랐지, 자신이 위험에 처한 어떤 한 사람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유일한 손길이었다는 부담감을 스스로 안아 본 적이 있는가? 

죽는 사람의 고통을 사는 사람이 알아야 하듯, 사는 사람의 고통도 죽는 사람이 알아야 한다. 매우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인간관계에서의 끝이란 것은, 상대방이 더 이상 내 앞에 없는 것을 의미하므로, 더러운 꼴 보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내가 죽는 것은, 나머지 사람들을 죽여 내 눈앞에서 끊어내는 것과 똑같은 행동일런지도 모른다.

자살의 징후(徵候)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생을 마감할 예정인 사람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징후(徵候)들이 존재한다. 즉 사인(sign)을 말한다.

생명존중캠페인생명존중캠페인

세계적으로 통상적으로 인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자살 신호로는,

1) 고통스러운 사건

2) 상실

3) 변화

등이 있다.

죽음 및 자살 의도의 언급과 자살 방법의 추구에 대해 밝히기도 하고, 희망이 없다, 삶의 의미가 없다는 낙심의 표현도 내보인다. 또는 덫에 걸렸다,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다거나 남에게 짐이 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대화나 메시지를 통해서만 징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술이나 약물 복용의 증가, 불안, 동요, 무모한 행동, 수면의 과도한 감소 혹은 과도한 수면의 증가, 고립감, 분노 및 복수심, 감정의 극단적 변화 등이 위험 징후로 여겨지고 있다.

추가적인 신호들로는, 죽음과 관련된 생각에 깊게 몰두하기 시작하거나, 때로는 이상하게도 갑자기 기뻐하고 침착해지는 변화가 오기도 한다. 마치 초월한 인간처럼 그동안 몹시 소중히 여기던 것을 외면하기도 한다. 알던 사람들을 방문하거나 전화를 해서 작별인사를 하는데, S.N.S.가 발달한 요즘에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차례대로 자신의 일이나 물건 등을 정리해 나가며, 소중히 물건임에도 남들에게 선뜻 나누어주기도 한다.

가장 죽고 싶어질 때

우리는 어떤 때 가장 죽고 싶어질까? 또, 왜 죽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기울까?

생명존중캠페인생명존중캠페인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 Durkheim)가 사회학적, 통계학적 연구를 통해 1897년에 내 놓은 ‘자살론(Le suicide)’이라는 저서가 존재한다. 그의 연구는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집단과 사회를 그 대상으로 하였기에 정신병리의 사회적 책임성이 대두되고 있는 현재에 있어 다시 각광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인간 개개인과 사회와의 관계가 잘못되면 자살이 일어난다고 보았고, 자살의 종류를 이기적, 이타적, 무질서적, 숙명론적 자살의 4가지로 나누었다.

1) 이기적 자살(egoistic suicide)

사회적 통합수준이 떨어졌을 때에 발생한다. 사회구성원 간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거나 아웃사이더 혹은 외톨이로 느껴질 때 잘 발생하며, 자기 자신밖에는 자신을 도울 사람이 없다는 결론에서 발생한다. 삶 속에서 혹은 스트레스 하에서 자신들이 고립되어 있으며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2) 이타적 자살(altruistic suicide)

이기적 자살과는 반대로 이는 사회적 통합수준이 너무 높아졌을 때에 발생한다. 즉 사회적 통합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개인의 욕구와 가치보다는 집단의 규범과 목표를 더 중요시한다.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자살테러 같은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3) 무질서적 자살(anomic suicide)

‘이와 같은 무통제적 자살은 사회의 규정과 규범의 정도가 너무 타락해 있을 때에 발생한다. 주로 극심한 사회스트레스나 사회변화가 만연할 때에 발생한다. 제대로 된 규범 없이는 개개인은 목적달성에 실패할 것이며 이어서 극단적으로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삶 자체가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삶 자체가 무의미해 질 수 도 있다.

4) 숙명론적 자살(Fatalistic suicide)

자신의 삶이 너무 빡빡하고, 규범 속에서 너무 많은 구속을 받을 때에 발생한다. 이들의 삶은 극단적 규칙의 지배를 받고 사회는 그들에게 너무 높은 요구와 기대감을 지니고 있다. 지나치게 될 경우 개인의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 모두, 결코 삶을 마감함으로써 개인의 뜻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최성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공유하기

    주소 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ctrl + v 를 눌러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하세요.

    확인
    닫기
최성환 인천우리병원 전문의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