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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치료

진료 후 며칠 만에 찾아와 왜 아직 증상이 사라지지 않느냐며 따지듯 물어오는 환자들이 있다. 한국에서 한의사로 살아가며 느끼는 가장 답답한 부분 중 하나다. 아마 양학을 다루는 의사들의 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다른 나라에 비해 큰 고민 없이 약을 먹고 시술을 받고 수술을 한다. 그리고 약을 먹었으니 곧 병이 나을 거라 기대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기대는 백이면 백 허물어진다. 사고를 당하거나 오염물질에 접촉했거나 강력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거나 하는 급성질환, 즉 특수상황이 아니라면 우리 몸은 치유를 위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몸에 문제가 생기면 열이 나거나 통증이 오거나 발진이 생긴다. 설사나 구토를 할 수도 있고 계속해서 기침을 할 수도 있다. 병이 나면 생기는 '이상 증상'에는 주로 고통이 수반된다. '고통(pain)'은 몸이 주인에게 경각심을 알리는 신호(signal)이자,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침입자와 싸우는 ‘과정’이다.

위장장애도 마찬가지다. 배탈이 나면 복통, 구토, 설사, 가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증상이 동반된다. 장트러블이나 위장장애는 일상에 직격타를 주기 때문에 보통 내과를 찾아 처방을 받고 약을 먹는다. 문제는 대부분의 처방약이 증상을 억제시키거나 덜 느끼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사실 우리는 병에 걸렸을 때 어느 정도 그 병이 주는 고통을 느끼고 감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앞서 언급한 특수상황을 제외하고) 몸이 아플 때 발현되는 열과 고통은 몸이 침입자와 싸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면역체계가 침입자와 싸움을 할 때 환부의 혈류량을 증가시킨다. 이때 우리 몸에는 열이 나고 그로써 종기나 발진이 생기기도 한다. 열이 나고 몸이 아프면 어쩔 수 없이 일이나 운동을 멈추고 최대한도로 몸을 쉬게 되는데 이것 또한 치유를 위한 필수 과정이다.

고민하는 남성고민하는 남성

그렇게 고통스러운 싸움을 견뎌낸 면역체계는 ‘내성’이라는 자생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과정을 약으로 억제하거나 중단시킨다. 지금의 증상을 없앨 수는 있겠지만 머지않아 똑같은 증상, 더 심한 증상을 겪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항생제나 면역억제제, 소염진통제, 스테로이드, 지사제, 해열제 등 각종 약물을 오용하거나 남용하면 교감신경이 긴장해 면역체계가 교란되는 문제도 있다.

질병을 치유하는 데 왕도는 없다. 질병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문제를 촉발시킨 원인을 제거해 나가는 행위가 곧 치료다. 많이 먹는 게 문제라면 적게 먹는 게 치료가 될 것이고, 과로하는 게 문제라면 휴식을 취하는 게 치료가 될 것이다.

문제는 현대사회를 살면서 질병을 촉발시킬 수 있는 무수한 요인들, 가령 음식, 식습관, 나쁜 자세, 극심한 스트레스, 급격한 온도변화나 과도한 빛 등의 환경을 한 번에 모두 제거하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질병의 증상들을 당장 없애려는 욕심을 버리고 이 원인을 단계적으로 감소시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 환자들을 만나면, 몇 달 혹은 일 년이 넘는 기간이 소요되더라도 그들과 함께 걸으며 이정표를 제시한다.

고칼로리 음식을 먹고 덜 움직이는 현대인은 대사 문제에 따른 질환을 겪기 쉽다. 겉보기에도 체중이 많이 나가는 비만 환자의 경우에는 생활습관을 교정하면서 증상이 누그러지는지 관찰하는데, 에너지대사에 따른 질환은 식생활만 교정해도 의외로 빠른 차도를 보이기 때문에 파악이 쉬운 편이다.

이와 함께 자율신경, 즉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을 교란시킬 만한 환경에서 생활하지는 않는지 체크한다. 자율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면역력은 기본적으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돼야 할 저녁 시간대에 밝은 빛과 시끄러운 소리에 만성적으로 노출되지는 않는지, 종일 너무 추운 환경에서 근무하다 퇴근할 때 극심한 온도 변화를 겪지는 않는지, 평소 과로를 하지는 않는지, 반대로 운동 부족은 아닌지, 만성질환이나 면역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화학약품을 사용하지는 않는지 등 여러 요인을 추적하고 감소시킨다.

이 단계에서 호전을 보이지 않을 경우 세균총, 장 누수 문제를 의심한다. 특히 알레르기나 아토피가 심한 어린이는 반드시 장내세균분석을 통해 세균총 상태를 점검한다. 이들의 경우 대부분 장 내 유해균 비율이 굉장히 높다는 결과가 나온다. 새는 장 증후군을 겪는 경우도 상당수다.

부모들은 자녀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 알레르기 검사를 통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음식이나 요인을 찾고, 그 요인들로부터 아이들을 격리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부모들이 24시간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자녀들의 생활을 100%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알레르기나 천식, 비염, 아토피 증상들은 음식물이나 항원을 바이러스라고 인식해서 면역활동이 항진되는 경우에 나타날 수도 있지만, 진짜 해로운 물질이 장벽을 뚫고 혈액으로 흡수되는 장 누수 문제 때문에 나타날 수도 있다.

인체는 유기적인 하나의 시스템이다. 어느 한 부분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그 문제에 낀 녹만 제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왜 계속 이 시스템이 부식되는지 여러 요인과 원인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변기원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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