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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시라이프

# ‘각잡아’ 군의 취미는 컴퓨터 게임과 영화 보기이다. 하지만 컴퓨터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유난히 할 일이 많은듯하다. 수십 분간 컴퓨터 키보드를 정렬하고 마우스 패드를 정렬하고 모니터가 삐뚤어지지 않았는지 반복적으로 매만진다. 게임을 하다가도 모니터가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불안해지면서 모니터를 이리저리 만져본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90분짜리 영화를 보는데 모니터의 각도가 삐뚤어진 것 같아 반복적으로 각도를 맞추다가 4시간이 지나서야 영화를 다 보았다. ‘각잡아’군의 책상은 마치 가구회사 카탈로그에 나오는 것 같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책들은 높이 순서대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사각형의 연필꽂이에 꽂혀 있는 연필들은 키가 한결같이 똑같고 같은 면이 앞을 바라보고 있다. 장을 보러 마트에 갔던 ‘각잡아’군은 진열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자신도 모르게 매의 눈으로 훑어보다가 정렬이 흐트러져 있는 것들을 바로잡고 있다. 마트 직원이 아닌데도 말이다. 결국 진열대만 맴돌다가 마트에서 마감이 다가옴을 알리는 노랫소리를 듣고서야 체념을 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정렬 강박증정렬 강박증

‘각잡아’군처럼 흐트러진 것들을 정렬해야 보기가 좋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목적을 두고 정렬하는 것과 정렬 강박은 다르다. 정렬 강박은 삐뚤어진 것을 보고 있으면 불안감이 발생하고 그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정렬한다. ‘각잡아’군은 이러한 정렬 강박증으로 인해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에 몰입도 못 할뿐더러 정리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쏟아서 정작 중요한 일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일렬로, 색깔별로 정리되어 있는 옷일렬로, 색깔별로 정리되어 있는 옷

이러한 정렬 강박은 어떻게 고쳐야 할까?
세 가지 치료법이 있는데 그 중에서 약물 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면 대뇌에 작용해서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강박 사고를 줄여주는 약물 치료를 시행한다.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차단하는 항우울제 계통의 약물을 적어도 12주 이상 사용해야 하며 60% 이상에서 치료에 반응을 보인다. 약물치료는 최소 1~2년가량 유지해야 한다. 치료의 반응을 보고 약을 끊어볼 수 있으나 단약 이후에 재발률이 높은 편이다. 한 가지 약물에 반응이 없다면 다른 종류의 약물로 교체하거나 타 약제와 병합요법을 한다.

일렬로 정리딘 블럭일렬로 정리딘 블럭

비약물 치료인 인지행동치료를 함께 병행한다면 단약을 한 이후에도 재발률을 낮출 수 있다. 인지행동치료란 비합리적인 생각의 구조를 파악하고 교정하는 인지치료와 불안감에 노출하고 그 반응을 방지해보는 류의 행동치료가 접목된 과학적으로 검증된 치료법이다. 예를 들어 강박적인 사고를 나열하고 그 생각이 떠오를 때의 감정과 단서, 이유를 검토한다. 한 가지 생각에 다른 관점을 접목시키거나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사용하여 스스로 생각을 객관화시킨다. 강박행동을 참으면서 고조되고 호전되는 감정적 불편함을 5분 단위로 기록하며 구조화된 노출 방법을 사용한다.

이외에도 시술 및 수술 치료법이 있다. 수 년 이상 여러 가지 항우울제를 고용량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는 난치성 강박증의 경우가 그 대상이 된다. 방사선으로 강박증의 병태 생리 기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뇌의 부위를 여러 차례 노출시키는 감마나이프 수술(Gamma Knife Surgery), 초음파로 열을 발생시켜 대뇌의 특정 부위를 변형시키는 고집적초음파 뇌수술(Focused Ultrasound Surgery), 뇌조율기라고 불리는 장치를 뇌 안에 이식하는 전기치료의 일종인 뇌심부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 등이 있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김윤석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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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서울맑은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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