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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시라이프
얼굴을 감싸쥔 여성 얼굴을 감싸쥔 여성

성폭력 가해자는 2013년 24,835명에서 2017년 32,768명으로 32% 증가했다. 특히, 안전하다고 믿었던 학교에서도 지난 5년간 세 배 이상 증가했고 친족간의 성폭행은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학교도, 가정도 성폭력의 안전지대로 생각하기 어려운 요즘, 성폭력 피해자는 대다수 여성이 차지해 여성들의 두려움은 커지고 있다. 어디에서나 성폭력 위험에 노출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최성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들려준다.
 
◆ 학교에서의 성폭력
 
교실 교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어두운 뒷골목, 조폭들이 장악한 시장, 불법 외국인 체류자가 많은 동네도 아닌, 바로 초·중·고등학교입니다. 학생들은 알 것입니다. 말을 하지 않을 뿐. 왜 말을 안 할까요? 왜 차라리 죽음을 택할까요? 민감한 문제이지만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소년들의 ‘끼리 문화’는 생각보다 살벌하고 인간 집단은 침팬지 무리보다 잔혹하니까요. 성인사회도 변했듯이, 아이들, 청소년들의 세상도 무섭게 바뀌어 버렸습니다.
 
과거의 학교 안에서는 잔혹한 성폭력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학교 밖 야산 등지에서 남학생들에게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는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학생들만이 집단 성폭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여학생 집단에게 여학생이 성추행과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까지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던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들에 의한 은밀한 성추행과 성폭력과는 달리 새롭게 등장한 범죄행위입니다.
 
◆ 가정 내에서의 성폭력
 
이마를 짚고있는 여성 이마를 짚고있는 여성
대부분 남자형제에 의해 자행되어 왔습니다. 오빠의 친구 혹은 사촌오빠나 젊은 삼촌들에 의해 가해진 폭력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딸에 대한 폭력도 종종 있어왔습니다. 벌어진 상황도 상황이지만, 실질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집안에서는 문제를 숨기거나 최소화하려고 합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숨기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 여성이 집안의 명예를 더럽힌 것으로 단정 지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주변의 태도는 피해 여성에게 치유하지 못할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피해자들은 고통을 혼자 감수하고, 심지어는 모욕감까지 견디어야 합니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문젯거리로 가족의 눈엣가시가 되어버립니다. 도움을 청하려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한 이후의 가족들의 표정은 이 일이 있기 전의 표정과는 180도 달라져 있습니다. 물론, 가족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기에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겠지만, 가족의 태도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 주었으면 좋겠구나'인 것처럼 보입니다. 가족들이 처음에는 몹시 흥분하다가도 오빠, 삼촌, 아빠가 가해자로 드러나는 순간 방금 전까지의 흥분된 모습은 사라지고 난감한 표정으로 바뀌며, 고작 해결이라는 것이 ‘네가 빨리 잊어라’, ‘없던 일로 생각하면 안 되겠니?’가 됩니다. 이럴수록 폭력은 재발되고 고통은 반복됩니다. 당하는 사람의 잘못인 양 상황은 종료되고, 피해자는 도움을 포기하고 상처를 지닌 채 혼란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 타인에게 당한 성폭력
 
요즘처럼 감시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된 경우에야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 가해자를 추적하게 되지만, 옛 시절에는 신고만 해놓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범행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으므로, 실종된 사람들은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상대를 안다면 벌을 받게 하거나 피해 다니고 미워할 수 있겠지만, 누구인지 모르니, 피해자는 불특정 다수의 남성에 대한 혐오감을 지니게 되고 의심과 적개심을 품은 채 살아가게 됩니다.
 
◆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손을 잡고있는 모습 손을 잡고있는 모습
여러분이 멘토(mento)라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1.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2. 너만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다.
3. 집착하다 보면 너만 망가지니, 잊어버리고 강하게 살아라.
4. 철저한 복수를 함께 계획해 보자.
5. 그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져 주면 좋겠지?
6. 네가 너무 불쌍하다. 너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을 거다.
7. 상담을 받아보자꾸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을 듯한데, 어떤 해결방법이 나올까요? 이 과정은 마치 죽은 사람을 되살려내야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왜냐? 결코 물질적으로 보상할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폭력의 피해자가 목숨을 잃어왔습니다. 살아나왔다는 것이 기적이지요.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피해자(victim)’라는 용어보다는 ‘생존자(survivor)’라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합니다. 성폭력은 물론, 죽음까지 당할 뻔했고, 그 상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뜻입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상투(常套)적인 답변입니다. 내과나 외과계열은 상투적이고 반복적 치료에 익숙해질수록 훌륭한 의사가 되지만, 정신과 의사가 반복적인 치료와 더불어 매너리즘에 빠진다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습니다. 외과 수술은 환자를 마취시키고 하는 것이 더 편합니다. 왜냐하면 의사가 환자의 환부가 어디인지, 또 어떻게 수술해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정신의학은 마취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에 돌입합니다. 정신분석학의 핵심논리상, 환자가 아픔의 충격(pain shock)으로 죽을 수도 있지만 마취를 할 수 없는 이유는, 환부(患部)의 정확한 위치는 환자만이 알고 있으며, 고통 속의 환자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여기가 문제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건 없는 자원봉사를 자청하는 천사 같은 멘토들도 많은데, '의욕'은 앞서겠지만, '실력'이 없을 수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최대한의 회복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위로와 격려의 심리적 대응, 증거보존을 위한 법의학적 접근, 법률적 지원 및 사회적 적응을 돕기 위한 공공적 접근과 전문적인 정신의학적, 산부인과 치료에 이르기까지 다각적(多角的)접근(Multi-dimensional Approach)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족한 예산과 시간을 가지고 함부로 다가갔다가는 저급한 치료, 형식적인 접근, 그리고 단기적 해결로 마무리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최성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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