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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면 많은 집에서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며느리들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며칟날 시댁에 갔다가 언제쯤 친정으로 넘어갈까’, ‘옆집 OO네는 해외여행을 간다던데’, ‘살림살이가 빠듯해졌는데 용돈은 얼마나 드려야 할까’. 남편도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평소보다 말수가 적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명절 내내 원망스러운 아내의 눈빛을 받아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이 모처럼 모여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덕담을 해도 모자랄 시간인 명절 전의 흔한 풍경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어머니 세대의 명절은 어땠을까?

전통적인 명절의 풍경은 이랬다. 여자들은 하루 종일 부엌에서 기름내를 맡으며 차례상을 준비하고 손님상을 내었다. 차례날이 되면 여자들이 정성스레 차려 놓은 차례상에 남자들이 절을 하고 제례의식을 치렀다. 조상을 모시는 자리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뒤이어 쉴 새 없이 손님들이 들어올 때마다 그에 맞는 상을 차려 내었고 남자들은 담소를 나누기 바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지금의 시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작금의 시어머니도 억울하다. 시어머니에게도 시어머니가 있었을 것이다. 호랑이 같은 당신의 불호령과 눈빛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부엌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었다. 부당한 줄 알면서도 모두가 그렇게 사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하는 생각에 눈물을 훔치며 살았다. 합리적인 사고를 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당신이 맞는다고 하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에 어울리지 못하는 예의 없는 며느리가 되었다. 남편은 그냥 참고 이해하라고 했다. 그 당시 연속극을 보면 이해 받지 못한 며느리들이 당신께 아무 말 못 하고 찬물을 머리맡에 떠놓은 채로 흰 붕대로 이마를 감싸고 끙끙 앓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그땐 그랬었지’ 라고 한 문장으로 담아내기엔 너무나도 억울한 기억들이 한처럼 가슴속에 묻혀 있다. 시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현재진행형인 지금의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어떻게 자기 편하자고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시어머니 앞에서 어떻게 저렇게 당돌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살겠다. 우리 아들이 효자였는데 며느리를 만나고 나서 많이 변했구나.'

야근하는 여성

우리는 어떤 시간을 살아내고 있을까?

과거에는 직업도 한정되어 있었고 경험과 연륜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대량생산, 글로벌화, 네트워크화, 개별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어떠한 결정이라도 한 사람의 경험에만 의존하기에는 위험이 커졌다.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에는 인정에 끌리기 보다 효율적인 선택을 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우리나라가 저성장과 장기 불황에 빠지다 보니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우리의 생각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지금의 며느리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현재의 며느리들은 남아선호사상의 그늘이 옅어지고 모계 중심의 사회가 주축이 되는 시대에 태어났다. ‘병들고 늙어도 곁에 남는 것은 딸들뿐이더라’ 고 하는 어르신들의 자조 섞인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각자의 가정에서는 성별과 관계없는 한 명의 소중한 자녀로 존중 받았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기치 아래 고등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대학, 같은 직장, 같은 직급에서 서로의 능력을 인정 받으며 결혼에 골인했더라도 ‘시월드’ 앞에선 알 수 없는 분위기에 불편함이 가시지 않는다. 새로운 식구로 인정받기 위해 시어머니의 의중을 알아 차리려고 노력했다. 인자하고 온화했던 시어머니가 말 몇 마디로 며느리의 환상을 깨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어쩜 자기 자식은 그토록 소중하고 남의 자식은 힘들어도 된다고 생각할까? 시댁에 먼저 가는 것도 백 번 양보한 건데 친정에 갈 때마다 어려워해야 하나? 나는 나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아내일 뿐인데 시어머니는 왜 자꾸 남편의 엄마 역할을 하라는 건지. 일 년에 두 번만 참으라고 하는 남편은 내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보기나 한 걸까?'

시어머니와 며느리

고부갈등은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

시어머니는 백 번 참고 한 마디 했을 때 돌아오는 며느리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참는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의 방향이 중요하다. 며느리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하기 전에 과연 우리 아들이 사돈에게 똑같은 요청을 받았다면 내 기분은 어떨까를 상상해 보자.

내 며느리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다. 내가 아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것만큼 사돈댁도 딸을 곁에 두고 싶어 할 것이다. 고정된 성 역할에 대한 생각이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는 것도 명심하자. 우리 문화는 이 순간에도 숨을 쉬며 변화하고 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되 평소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락을 드리자. 서로의 견해 차이를 꼭 명절 때마다 확인하고서 불이 붙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매일 보는 남편과도 자라온 성장 배경이 달라서 수시로 다투고 서로를 교정하려 한다. 하물며 1년에 얼굴 몇 번 보기 힘든 시어머니와 갈등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다이어트 책만 읽고 살이 빠지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뭐든 부딪혀보고 시간을 두고 생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역할이 빠진다면 이 모든 것은 허사가 된다. 남편은 두 개의 거대한 파도에 힘없이 휩쓸리면 안 된다. 먼저 지금 내가 어떤 파도 속에 들어가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한다는 뜻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반복해서 아내의 편에서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새 어머니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버린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내가 아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보다 더 많은 애정을 처갓집에 쏟아 부어야 한다. 별 일이 없더라도 어떻게 지내시는지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수시로 연락을 하고 애정을 쏟아 붓자. 작은 관심도 별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자연스레 부부가 서로에게 고마운 감정을 품고 이해를 넓히게 될 것이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김윤석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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