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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시라이프

“그냥 평범한 아내이자, 아이들 엄마였죠. 초등학교 상담교사라는 직업도 있고, 파일럿인 남편은 가정적이고 자상해 아이들에겐 좋은 아빠, 나에겐 더없이 훌륭한 남편이었고요. 집안일에 매달릴 필요도 없었어요, 가사도우미도 계시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거든요. 남들은 제가 참 행복해 보인다곤 하는데 그 안의 나는 삶의 무게에 점점 지쳐갔어요. 그때 유일한 낙이 술이었죠.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애교도 넘치니 남편도 그런 내 모습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았어요. 술은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마셔야 했고, 그렇게 되면서 술이 제 삶을 파괴하기 시작했어요. 술에 취해 수영장에서 익사할 뻔했고, 아이에겐 손찌검도 하게 됐죠. 술의 유혹은 거세고, 음주를 참을수록 그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화풀이하듯 쏟아냈어요. 남편도 한계가 왔는지 우리는 결국 별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다시 잘 지내고 싶지만, 그 말을 꺼내기가 어렵고, 결국 헤어지게 될 것 같아 두렵기만 합니다.”

남자가 사랑할 때(When a man loves a woman, 1994)남자가 사랑할 때(When a man loves a woman, 1994)

남자가 사랑할 때(When a man loves a woman, 1994)라는 영화 속 주인공 앨리스 그린(멕 라이언 역)은 몰래 마시던 술을 이겨내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집니다. 이런 아내를 남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대해 조금씩 이해해가면서 별거 중인 아내를 찾아가 화해의 손길을 내밉니다.

◆ 키친드링커(Kitchen Drinker)란?

주방(키친)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주부(드링커)를 지칭하는 키친드링커.
예전에는 중년을 넘은 주부들이 우울증이나 화병에 시달리면서 남편이 먹다 남긴 술병을 조금씩 비우곤 했지만, 요즘에는 20·30대 젊은 주부들뿐만 아니라 독신 여성들의 이러한 음주행태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술을 따르는 여성술을 따르는 여성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7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알코올의존 등 정신·행동 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여성이 약 1.6만명이고 남성이 약 5.9만명이었습니다. 남성이 3.7배 더 많긴 하지만 문제는 증가추세입니다. 최근 5년간 추이로 보면 남성은 5.1% 감소했지만, 여성은 7.3% 증가했다고 합니다. 알코올과 관련된 문제로 병원을 찾는 여성 환자 수가 늘어난 배경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아이들의 등원, 등교 뒤 나만의 ‘간단한’ 술 한잔이 시작된다. 아이들의 등원, 등교 뒤 나만의 ‘간단한’ 술 한잔이 시작된다.

아이들의 등원, 등교 뒤 나만의 ‘간단한’ 술 한잔이 시작된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 자녀들은 각자 방으로 사라지고...  나만의 술 한잔은 밤에도 피할 수 없다.저녁에 돌아온 남편, 자녀들은 각자 방으로 사라지고... 나만의 술 한잔은 밤에도 피할 수 없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 자녀들은 각자 방으로 사라지고...
나만의 술 한잔은 밤에도 피할 수 없다.

◆ 남성보다 알코올중독에 쉽게 빠지는 여성

주방에서 술, 담배를 하는 주부주방에서 술, 담배를 하는 주부

대부분의 주부들은 외로움, 적적함, 근심을 덜어보려고 한 두 잔씩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술기운이 떨어질 때마다 한 모금씩 마시다가 나중에는 점점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2001년 발행된 일본잡지 ‘주간여성’에 의하면 생리적, 사회적, 심리적 이유로 여성음주가 40년 새 4배 증가했고, 20대의 경우 여성의 음주량이 남성보다 많다고 언급하였습니다. 남성의 경우 매일 과량의 술을 마시면 15년 만에 알코올중독이 되지만, 여성은 7~8년이면 충분하다는 의사의 의견도 실었습니다. 미국 의사들의 주장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왜 여자만 조심해야 하느냐는 것이 불공평하게 들릴지 몰라도, 생리적 차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 여성들에게 주로 상실감을 일으키는 문제로는 남자친구와의 결별, 이혼, 대인관계 훼손, 심지어는 반려동물의 죽음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의 죽음과 알코올중독 사례]
“대학입학과 동시에 자취생활을 시작한 A씨는 학업과 친구 사귀기에 바빠 부모로부터 선물받은 반려견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반려견의 죽음은 A씨에게 죄책감을 안겨주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술의 유혹은 더 이상 뿌리치기 어려웠고 졸업 후 직장 화장실에서도 몰래 숨어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이는 업무에 나쁜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그녀는 해고의 두려움에 또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기억 상실이 잦아졌습니다.”

◆ 키친드링커에서 벗어나려면

동고동락(同苦同樂)

부부부부

대부분 무언가를 잊고 싶어 마시는데, 잊을 정도로 마시다 보면 중독이 되겠지요. 힘든 일을 해결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도록 가족들의 진심이 담긴 사랑과 관심만이 이를 극복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현하기 전에 먼저 살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남자가 사랑할 때’ 영화 속 남편처럼 말이죠. 그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한다는 동고동락의 의미처럼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내에게로 달려와 자신감을 회복시켜 줍니다. “또 술 먹었어?”,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어디 아파?” 등과 같은 지적 위주의 말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당사자는 수치심을 느끼고, 자신감을 찾고 죄책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또 술을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컵을 들고 있는 여성컵을 들고 있는 여성 뜨개질을 하는 여성뜨개질을 하는 여성

자신에 대한 측은함이나 퇴폐적 감상에 젖어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지내다 보면, ‘술’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합니다. 때로는 가족의 진심 어린 격려마저 부담이 되고 맙니다. 술을 단번에 끊기가 힘들다면 술을 마시는 횟수를 조금씩 줄여가는 방법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 마시고 싶어도 “조금 있다 마시지 뭐”라고 생각하며, ‘뒤로 미루기’를 하고, 미룬 시간이 다가오면 그때 다시 “조금 더 있다 마시자”라고 하는 겁니다. 음주를 자제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괜한 자부심과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사람은 뭔가를 이뤄냈을 때 큰 기쁨을 느끼지만, 이상하게도 뭔가를 오래 자제했을 때도 큰 기쁨을 느낍니다. 이것은 참고 인내한 대가가 달다는 뜻의 ‘고진감래’와 일치합니다.

나쁜 버릇을 인내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신뢰감과 사랑, 자긍심이 자라나고 이를 바탕으로 ‘자제’의 힘을 더욱 키울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약한 마음을 이기고 욕망을 극복한 힘이 키친드링커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어떤 경우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자신감’을 얻게 해줄 수도 있습니다.

<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최성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인천우리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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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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