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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치료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창 영어를 배우던 시절, 문맥상 "나도 그래"나 "나도 좋아" 정도로 통용되던 "미투(Me, too)"가 "나도 당했다"의 상징적 표현이 되리라고는. 미국에서 시작된 '#metoo'와 '#withyou'가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면서 우리나라에도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법조계, 문화예술계, 학계, 종교계, 의료계 등에서 검은 손길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인다. 하루를 거르지 않고 연이어 터지는 피해 여성의 고백 속 가해자의 행태는 이제 '가관'을 넘어 '목불인견'에 이르렀다. 어디가 시작인지, 끝이 있기는 한 건지 알 수조차 없는 이 상황이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여성에게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이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사 최성환 원장(인천우리병원)에게 현 상황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미투 운동

워낙 민감한 문제인 만큼 이 상황에 대해 의견 피력을 꺼리는 전문가도 꽤 많습니다.

아무래도 주변 여론을 의식하여 심적 부담을 느낀 나머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원리적인 답변으로 얼버무리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저는 가능한 한 소신껏,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성희롱,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고통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자살 충동 등 정신적ᆞ신체적 후유증이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성희롱을 당하면 기분이 너무 나쁘고, 황당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불쾌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희롱으로부터 시작하여 성폭력 등으로 피해 정도가 커지면 증상도 이에 따라 심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후유증과 피해는 일반인의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심각하며 오랜 시간 지속됩니다. 다만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의 경험이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피해의 극심함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폭행 피해자의 체험은 상상할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비인간적이고 모욕적인 경험입니다. 불면, 우울,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약물에 의존하다가 약물중독이 될 수 있고 자해 행동을 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서는 반복적인 재경험과 무감각 상태 혹은 과도한 각성 상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가장 흔한 증상으로, 우리말로 ‘회상’이라고 해석되는 플래시 백(flash back) 현상입니다. 과거의 상황이 갑자기 떠오를 때 참을 수 없는 더러움과 무서움 그리고 숨막힘,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충격적인 상황을 반복적으로 재경험하는 것입니다. 마치 발작처럼 나타나지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정도가 약해지고 빈도도 줄어 조절할 수는 있습니다. 반복적인 플래시 백을 통해 마음이 정돈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미투’를 할 수 있겠지요.

성희롱 수준에서는 이를 피해 가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고, 약이 오르고, 불쾌감이 있을 수 있지만 성폭력을 당한 사람에게는 단순히 환자나 피해자라는 표현보다는 '생존자(survivor)'라는 표현을 씁니다.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생존한 것이니까요.

우울한 여성

이러한 고통 극복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특히 심리적 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하는데 어떠한 심리 치료가 도움이 될까요? 더불어 약물치료 등도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성희롱 등에 대해서는 안정과 상담 혹은 가벼운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성폭력 이상의 피해에 대해서는 더욱 침착하고 합리적인 대처가 필요합니다. 응급치료, 정신치료, 약물치료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안전한 분위기에서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동시에 증거자료를 확보해 놓는 침착성까지 필요합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기록도 필요합니다. 대부분 당사자나 보호자 모두 당황한 나머지 초기 대응에 실패하는 편입니다.

미투 운동이 동조하는 심리 때문에 더욱 활발해진다고 합니다. ‘동조’라는 것이 정신적으로 어떠한 기능과 작용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동조 자체는 용기 있게 나서는 사람과 때를 잘 맞추어 의견과 행동을 같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니 때를 놓치면 동조의 효과는 사라집니다. 동조는 '공감(empathy)' 능력을 통해서 가능하며, 공감은 의견을 함께하는 것을 넘어 그 마음까지 이해하는 수준을 의미합니다. 공감과 동조를 통해 함께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동병상련’이라는 표현이 있듯, 같은 병 즉 고민을 앓고 있는 사람끼리 잘 통한다는 것이지요. 단, 네 편과 내 편을 나누는 것은 동병상련이 아닙니다. 미투 운동에 대한 동조가 여성 대 남성의 ‘편 가르기’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뜻입니다.

미투 같은 동조가 위안의 힘도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런 고백을 듣고 반응하는 대중의 위로도 치료 효과가 있을까요?

혼자서는 미투가 불가능합니다. ‘미’를 외친 사람이 있으니, ‘투’를 붙여 ‘미투’가 되는 것이지요. 이에 반응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입니다. 메아리가 없으면 야호를 하기 민망하지요. 그리고 외침이 없으면 메아리가 퍼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동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하지 않으면 이 정도 한계치에 도달할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릅니다. 현재 서구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의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소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분위기가 수그러지면 한국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한편 현재의 미투 운동을 보면서 더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피해를 보았지만 고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은 상실감을 느낄 수 있고 소수 피해자를 위한 특혜로 비쳐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습니다. 미투를 외칠 용기를 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억압이나 위협 속에 사는 피해자도 많기 때문입니다.

위협을 받는 여성

본인의 나쁜 경험을 고백하려는 심리와 행동이 성폭력에 대한 상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을까요?

공감과 동조를 하기 위해서는 피해자 서로 간에, 혹은 직접 피해자는 아니지만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모든 내용을 고백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마음을 나눈다는 뜻의 '셰어링(sharing)'이 중요한데, 이 셰어링이 충분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고백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피해 상황을 자세히 밝혔는데 충분한 나눔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감당이 어려워 위험합니다. 남들의 가십거리나 재미, 이벤트로 변질되는 순간, 더 큰 불행이 찾아오므로 주변에서 공감과 동조를 해주는 이들은 고백한 사람을 위해 진정성을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여성 입장에서 일부 남성이 친밀감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과도한 접촉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남성들은 정말 이러한 성적 행동을 친밀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여성이건 남성이건 분명히 서로 호감이 가는 사람과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 자꾸 친밀감을 내보이려고 할 때 우린 많이 불편하지요. ‘성적 행동’이라는 용어에 대해 아직 정확한 규정이 없어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불명확하지만 “남성의 친밀함이 나는 불편하다”라는 표현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원론적인 답변을 떠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많은 이의 존경과 관심을 받는 사람은 자존심과 자아 도취감이 높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만큼 상대의 거절이 상처가 될 수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따라서 그러한 친밀함이 불편하다면 처음부터 확실하고 단호하게 표현하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가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남성은 여성의 사소한 거절도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로 여길 수 있으므로 이 역시 주의가 필요합니다. 여성들이 친절을 받아들이다가 거부할 경우처럼 상대방의 기대감에 배신감을 심어주었을 때, 혹은 처음부터 상대가 천박하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혐오감을 드러내어 상대의 공격성 혹은 잔혹성을 증폭시켜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쉽게 굴욕감을 느끼며 잔혹한 방법으로 복수를 시도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상황 역시 피해 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남성의 위협

일반적으로 죄책감 없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러한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가한 남성들 역시 비정상적인 ‘성적도착증’이 있다고 봐도 될까요?

현재 문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나 성적도착증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권력의 힘과 매력을 확인한 후, 자아도취에 빠져 상대방이 자신을 무조건 따른다는 환상에 젖어버린 상태입니다. 나중에는 습관처럼 중독이 되어 자신도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가 되지요.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미투 운동이 터져서 죄에 상응하는 지탄과 벌을 받아야 결국 멈추는 것이지요. 본인들도 미투 운동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에 자신을 멈추게 되었으니까요.

이처럼 성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남성은 선천적으로 죄의식이 부족하거나 도덕성이 결여된 것으로 보입니다.

맞습니다. 죄의식과 도덕성의 일부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람이기에 앞서서 육체와 본능을 지닌 동물입니다. 동물들의 짝짓기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듯 성적 행위가 결코 평화롭거나 로맨틱하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을 본능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으므로 서로 주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을 권력형 성폭력, 위계형 성폭력이라고 지적합니다.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성의 비이성적인 보상심리 또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인정받고 싶은 비정상적 욕구로 인해 벌어지는 것인지요?

연예계, 예술 문화 분야 등 이런 상황이 잘 벌어지는 현장의 특성이 있습니다. ‘스스로 상품이 되려고 자처해서 나선 사람이 이런 것을 견디지 못한다면 앞으로 클 자격이 없는 인물이며 어려움을 넘길 능력이 없고 자질이 부족한 것’이라는 남성 위주의 비논리적 판단과 위협이 만연합니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이러한 비합리적인 상황을 정당화시키고 악용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이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과 의식부터 개선이 시급합니다.

죄를 지은 남성

피해자에 앞서 이러한 남성부터 정신적으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떠한 치료와 교육을 받아야 할까요?

앞서도 이야기했듯 이들은 이미 충분한 교육을 받고 각종 혜택을 누린 사람들입니다. 영어로는 셀러브리티(celebrity)라고 하지요. 이들에 대해 전문적인 치료까지 제공하는 것은 사치라고 봅니다. 차라리 앞으로 자라서 사회 주역이 될 우리 청소년의 정서 상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지도해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이 만연하는 것이 범죄 형량이 낮아서 그렇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범죄 형량이 높다면 심리적으로 이러한 행동을 자제하도록 하는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을까요?

사회질서와 개인의 삶을 위협하는 성범죄에 대해 실질적인 형량이 높지 않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형량이 무조건 높다고 이러한 행동을 자제시킬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중범죄에 대해 정해진 판결이 무조건 사형이라면 범인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바라거나 자수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증거인멸만을 위해 더 잔혹한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이러한 행동을 쉬쉬해주고 눈감아주는 침묵의 카르텔 때문에 문제가 더욱 커졌다고 봅니다. 같은 단체 내에서 이런 행동이 범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은 어떠한 심리인가요?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라”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령 예전에 피해를 당했거나 이에 대해 방관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만족할만한 보상을 받았다면 새로운 피해자가 이런 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문제를 터뜨리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잦아진다면 이들은 마치 일상의 업무나 과제의 연장처럼 폭력 행위에 협조하게 될 것입니다. 공범이 되는 것이지요.

여성 인권 운동

앞으로 어떤 환경이 되어야 이러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여성의 성 상품화를 자제해야 합니다. K-문화의 일부가 건전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요즘 일본이 아닌 한국이 여성의 성적 매력을 수출하는 대표 국가가 되어가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추세를 멈추지 못하면 우리 모두 퇴폐화의 공범이 될 수 있습니다. 남성에게 “유혹은 강해지는데, 감당할 방법은 없다”는 핑곗거리를 제공할 수 있으며 “유혹하는 여성에게 원죄가 있다”는 식의 종교적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사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이번 일을 일부 업계에 해당하는 특수 상황으로 치부하거나 고소ᆞ고발과 폭로전으로 여기면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상처만 입고 실질적 결과를 얻지 못한 채 끝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미투에 참여할 수 없는 소외계층도 배려해야 합니다.

미투의 확산이 사회적 소통망인 SNS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더 심각한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두려움이나 감시로 인해 동참할 수 없는 계층에게 위화감을 조성할까 걱정됩니다. 내전이 지속되고 난민이 발생하는 지역의 여성 인권,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에 새롭게 자리 잡고 있는 이주 여성노동자 및 다문화 가정의 여성 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는 미투 운동이 되기를 바랍니다. 생각이 새로워져야 우리와 사회 모두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최성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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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 * 윤 | 2018.03.10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