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질환·치료

공자의 제자 중에 증자라는 이가 있었다. 제나라에서 그를 초빙하여 높은 벼슬을 주고자 하였으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다른 사람의 녹을 먹게 되면 다른 사람의 일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부모님이 연로하시므로 나는 차마 부모님을 멀리하고서 다른 사람을 섬길 수는 없다.

나의 계모가 나에게 잘 대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공양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내 처가 설익은 밥을 차려 놓은 적이 있어 그 일로 나는 내 처를 쫓아냈다. 밥을 짓는 일은 작은 일이지만 큰일의 경우는 어쩌랴 싶어 내쫓았다.”
지금 시대에는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지만 효를 백행의 근본으로 생각했던 증자에는 자신의 처보다는 부모를 아주 소중하게 여겼던 것 같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중에 어머니는 하나고 처는 다시 얻으면 된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내 진료실인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여자분들 중에는 고부갈등 때문에 힘들어서 오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예전에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힘들게 해서 병원에 와서 하소연하는 며느리들이 많았다.

두통을 호소하는 노년 여성 두통을 호소하는 노년 여성

시어머니 구박이 심한데 남편은 나 몰라라 하고 이혼하고 싶어도 애들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우울증이 생겨 병원에 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시어머니 구박 때문에 병원에 오는 며느리보다는 며느리 때문에 병원에 오는 시어머니가 더 많다. 몇 달 전부터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60대 아주머니가 있다.

남편은 몇 년 전에 병으로 죽었고 2년쯤 전에 아들을 결혼시켰다. 며느리가 예쁘고 참해서 마음에 들었고 아들 며느리는 따로 살림을 차렸다. 결혼한 후에 며느리에게 연락 없이 며느리 집을 방문했다가 며느리가 크게 화를 냈고 아들에게도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그 뒤 며느리 집에 가는 것이 불편해졌다. 그 뒤 관계를 회복하려고 전화를 자주 하다가 전화를 자주 한다고 며느리에게 야단을 맞았다. 1년 뒤 손자가 태어났고 며느리가 일이 있을 때는 애를 봐 달라고 부른다.

하루는 애를 봐 주러 갔다가 슈퍼에서 장을 봐서 찌개를 끓여 먹었다. 며느리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안 먹었다고 며느리가 투덜거렸다. 그 뒤로는 며느리 집에 가면 라면을 끓여 먹는다. 아들, 며느리가 가끔 집에 오면 며느리는 아침 11시까지 잔다. 아들과 며느리 사이는 좋고, 아들은 며느리에게 꼼짝도 못 한다. 며느리를 피하고 싶지만, 아들을 위해서는 참아야 하고 기도하면서 견딘다.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어서 병원에 오는 경우는 대부분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분들이다. 오랫동안 같이 모시고 살면서 지치고 힘들고 답답한 마음이 생겨서 병원에 오신다. 남편 생각해서 어머니와 같이 살 수밖에 없고 어머니와 정이 들어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는 것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울하다.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어 오시는 분 중에 젊은 며느리들도 있다. 그들은 힘든 것을 오래 참지 못하고 시댁에 가는 것을 중단하고 시부모님을 보지 않는다. 남편이 시댁 가는 것을 허락하는 며느리도 있지만, 남편도 시댁에 가는 것을 막는 며느리도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고부간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더는 시어머니가 권력자가 아니다. 아들은 더는 어머니 편에 서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아들은 며느리 편에 서는 경우가 더 흔하다. 시어머니는 더는 권력이 없고 아들에 대한 권리가 없음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며느리들도 더는 피해자가 아니다. 시어머니에 대한 피해 의식을 버려야 한다.

이제는 서로가 동등함을 인정해야 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며느리, 시어머니는 다른 편이 아니라 같은 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팀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글 = 정건연세정신과의원 정건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공유하기

    주소 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ctrl + v 를 눌러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하세요.

    확인
    닫기
정건 정건연세정신과의원 전문의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