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레지던트 2년 차 때 주치의를 할 적이다.
환자 중에 우측 편마비로 인해 몸의 오른쪽을 전혀 쓰지 못하는 환자가 있었는데 이 환자는 불행하게도 뇌졸중이 오던 날 넘어지면서 좌측 고관절에도 골절이 발생하여 다리를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이로 인해 재활의 기회도 늦어지고 우울증에 빠졌던 환자다. 편마비로 우측을 못 쓰고 골절로 좌측을 못 쓰게 되니 말 그대로 장기판에서 차 포 다 떼어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군인정신이분은 육군 대령으로 퇴역한 분으로 그 당시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뜻이 있어 군 생활을 오래 했다가 시대를 잘못 만나서(환자 말이) 이렇게 되었다고… 눈물을 흘리셨다.
이분이 재활의학과로 전과 되어 온 후 치료하면서 기운이 하도 없다기에 혈액검사를 해보았고 알부민 수치가 낮아서 단백질을 좀 많이 섭취하라고 했더니 고기는 잘 못 먹어서 싫다고 하셨다.
“그럼 달걀이라도 당분간 좀 드세요. 환자분은 고지혈증이 없으니까 드셔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는 필자의 부주의로 환자에게 달걀을 그만 먹으라는 말을 잊고 지냈는데 한 달 뒤 환자가 이러는 것이다.
“저 선생님…이제 달걀을 그만 먹어도 될까요? 이젠 달걀을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아요”
“음, 그럼 1달을 넘게 달걀을 2~3개씩 드셨단 말입니까?”
“선생님이 그만 먹으라고 안 해서…”
필자는 그때 환자의 단백질 수치가 정상화된 이유가 식사를 잘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달걀을 지독히도 싫어하던 사람이 의사가 지시했다고 참고 끝까지 먹었던 것이다. “하라면 한다”라는 군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수개월 뒤 환자의 우측 어깨가 교감성 반사성 이영양증(RSD)이 발생해 통증이 매우 심하고 관절운동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어찌 된 게 환자는 얼굴만 찌푸리고 안 아프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수일을 치료하다가 약기운에 통증이 없나 생각이 들었지만, 지난번 달걀 사건도 있고 해서 여쭤보았다.
“저기요, 환자분 군인정신 빼고 얘기해 보세요. 정말 안 아파요? ”
그랬더니…
“선생님!! 저! 사실은 아파 죽겠어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필자뿐 아니라 병실에 있던 환자와 보호자, 간호사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에 아픈 것을 군인정신으로 이겨내다니!
그분은 결국 지독한 노력과 가족들의 지극한 병간호로 조금씩 걷게 되고 이후에는 보훈병원으로 전원하셨다.
그 이후로는 남자환자들이 오면 군대생활을 특히 오래 하신 분에게는 꼭 물어본다.
“자! 군인정신은 빼고 말씀하세요!”
김주현 하이닥 소셜의학기자 (재활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