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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치료

자살 문제의 취약 계층

의외로 고등학교 졸업연령에서부터 50대 후반까지의 연령대의 사람들은, 부모가 있거나 자녀들이 지켜보고 있기에, 또는 사망으로 이어진 이유가 자살이라고 판정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 비교적 정확한 사고경위의 파악이 이루어지는 편이므로 상대적으로 관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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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초, 중, 고등학교 생활 속의 갈등 등이 원인이 되어 자살하는 학생들은 자살 문제에 있어 매우 취약한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과학적이고 철저한 재수사를 하더라도 결론은 자살이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와 판단력 및 경험의 미숙 그리고 두려움을 피할 곳이 없어 자살이란 극단적 방법을 택하는 것일 뿐, 이들 초, 중, 고등학생들의 자살이야말로 철저한 사전관리를 통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취약계층은 돌봐 주는 사람들이 없는 노인계층이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고생 덜하시고 일찍 가시는 것이 낫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당장 하루만 살고 내일 죽더라도 오늘의 삶은 존귀한 것이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며 인간은 늙을수록 허리가 굽는다. 하지만 거역 아닌 순종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이왕이면 내가 죽은 후 돌아갈 하늘 아래 거역보다는 순종이 낫지 아니한가?

‘버킷 리스트’의 진정한 의미

‘뛰어오르기 전에 다시 보라(Look before you leap)’라는 영어 속담이 있다. 이는 위험한 일을 수행할 때에는 그만큼 더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한 번 더 생각하라’는 의미가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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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요즘 함부로 마구 사용하는 용어 중에는,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는 단어도 있다. 마치 무슨 낭만적 시사용어처럼 아무나 가져다 쓰는 행태가 빈번하게 벌어지고는 있지만, 원래 뜻은, 목매어 자살하려는 사람이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 양 발은 버킷(물통)위에 놓고 있다가, 자기 물통을 자기 발로 차고 목매어 죽는 행위에서 나온 말이다.

즉, 물통을 발로 차기 전에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면서, 혹시 살아있는 동안 하지 못해 후회할 어떤 일들이 남아 있을까를 리스트로 작성한다.’는 의미이다. 한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렵기에 신중하라는 뜻일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자살을 택한 사람은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인 ‘가롯 유다’ 한 사람이다. 이 당시의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해서 죽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머지 11명의 제자들도 모두 비참한 죽음으로 최후를 마친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비겁한 죽음이 아닌 증거자(martyr)로서의 순교(殉敎)를 택한 것이다. 용기 있는 자들은 당당하게 죽음을 기다린다.

친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우리는 이 땅에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없이 그저 태어났다. 누구는 잘난 집에, 누구는 못난 집에 태어났는데, 이것은 마음대로 선택하여 결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각자의 환경에 따라 얼마나 많은 시련과 아픔과 상처와 혼란을 경험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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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에 주어진 모든 문제와 시련들은 바꾸기도 힘들고 거절할 수 도 없으니, 딱한 노릇이긴 하다. 비록 우리 스스로가 인생의 시련과 불행과 상실과 상처를 바꿀 능력이 부족한 것이 냉정한 현실이지만, 이런 시련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갖춘 듯 보이는 사람들마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올 때가 있었다면 갈 때가 있는 법. 태어난 때가 있다면 반드시 죽는 때가 있다는 것은 인간인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다. 탄탄한 환경, 탁월한 능력, 엄청난 부와 명예가 우리를 철저하게 지켜주지는 못한다. 그것만이 행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주어진 인생에 어떤 반응을 보이며 살 것인지’가 우리에게 삶이 주어진 이유일지도 모른다. 내가 받는 시련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인생의 숨겨진 비밀이 아닐까? 잘 사는 것이 아닌, 열심히 살아보려는 과정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아닐까? 성공한 이후보다도, 성공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장애물을 극복하며 애써왔던 시절의 과정이 더 즐거웠다고들 말하지 않는가?

비록 당장은 어두운 밤이지만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은 곳의 반짝이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살포시 미소 지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열쇠가 내 작은 호주머니 안에 들어있음을 느끼게 해 줄지도 모른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최성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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