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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치료

상대적 박탈감

지도자, 공인, 유명인, 연예인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크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이들은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을 듯함에도 불구하고 삶을 쉽게 포기하므로, 우리는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며 스스로가 매우 한심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가치가 높은 사람들도 저러는데 무가치한 우리가 살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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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일반 백성들이 지도자나 공인의 개인 생활을 관찰할 기회가 거의 없었으나, 요즘 시대는 매스미디어(mass media)의 영향으로 인하여 친구나 친지보다도 오히려 미디어와 접촉이 더 많은 편이다. 고로 미디어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가 우리의 습성(習性)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고로, 지도자, 공인, 유명인, 연예인들의 자살행위는 공공연하게 대중에게 여파를 미치게 된다. “대통령도 자살하는데?”라는 질문에 답을 해줄 전문가는 없다.

미디어의 광범위한 자살보도는 ‘모방 자살(copycat suicide)'을 촉발시킬 수 있다. 1774년, 독일의 문호인 괴테(Wolfgang von Goethe)의 1774년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되자 모방 자살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유행병처럼 전염되는 자살현상을 ’베르테르 효과(the Werther effect)‘라고 부른다.

자살(suicide)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의 ‘sui'(자신)와 ’caedo'(죽이다)의 합성어이다.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까?

가뜩이나 살고 싶지 않아서 죽으려는 것인데, 주변에서 억지로 자꾸 살라고 요구한다면, 살고 싶을까? 아니면, 더 죽고 싶을까? 사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우울증 메커니즘(원리)을 따르자면, 모순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자신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말에 더 우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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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학적이며 비관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감정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 중인 것인데, “무조건 좋아질 것이다. 빨리 벗어나라!”며 채근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가 없다. 마치 가까운 이의 죽음을 애도하며 애통해하는 사람 앞에서 기분 전환을 하라며, 신나는 댄스곡을 들려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함께 공감해주며 슬퍼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으며, 기회를 잘 보아서 서서히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또한 극단적인 행동을 자제시켜가면서, 그 동안 고통을 안겨왔던 바깥 환경을 개선해 주는 노력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죽지 말라’고 무조건 애원할 것이 아니라, 정녕 살고 싶은 환경을 마련해주어 희망을 갖게 해주어야 맞다는 것이다. 백 명 천 명이 말려도 죽고 싶은 사람은 죽는다. 기회는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치료를 받으면 좋아진다는데 있다.

친구, 가족, 친지나 선후배가 아닌,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 전문가들과의 대화와 상담은 상당히 의미가 있고 중요하며, 효과가 있다. 잘못된 고백이 오히려 죽음과 같은 극단적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흔히 ‘술자리 안주감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이 있다. 훈련 받은 전문가들은 그런 실수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친구나 지인들에게 고백한 비밀이 졸지에 술자리에서 안주감으로 돌변하고 그 이야기가 본인 귀에 다시 돌아오는 수가 있어서 이는 위험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라.

약물치료도 효과적이다. 약물은 강요하지 않는다. 밥 먹기는 싫어도 약은 먹는 사람들이 있다. 쓰린 속에 밥도 안 먹고 약을 먹는 행위는 다분히 자학적인 행위처럼 느껴져, 자학감을 다소 해소시켜줄 정도이다.

하지만 정신과 약은 대부분 식사시간과 관련이 없고 속도 쓰리지 않는다. 커다란 의식(儀式)이나 행사처럼 귀찮은 것이 아니고, 먹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자살에 실패하여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 보다는, 약 먹고 좋아지는 쪽이 훨씬 간단명료하고 유리하며, 저렴하고 시간도 절약된다. 잔인한 이야기 같고 정감 떨어지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이 말이 맞다.

고로, 자살을 부르는 우울증에 대한 초기 병원 치료는 지극히 중요하다. 필자가 비록 정신의학과 전문의이나, 반드시 의학적 치료만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 발생 초기에 있어서 훈련되고 책임감 있는 상담 전문가들과의 교류라도 반드시 갖기를 권한다.

학교에도 그렇고 우리의 지역사회에도 그렇고 다양한 심리학, 교육학적 방면에서 여러분을 위해 헌신해줄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우울증 및 자살예방을 위한 국가적 사업들도 활발한 상태이다.

우울증은 우리가 살면서 쉽게 걸릴 수 있는 병으로 통상 5명 중 한 명이 걸릴 수 있는 매우 흔한 질환이다. 고로 세계적으로 그 치료에 대한 연구 및 실질적 치료법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무조건 약을 처방 받는 것보다는, 우선 간단하지만 검증된 다양한 심리, 성격 검사를 통해서 실제 우울증상의 유무와 그 심한 정도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상태가 심하지 않을 때에는 상담과 심리치료를, 시간에 쫓길 경우에는 약물치료를, 상태가 심하여 사회적응이 어려울 정도일 경우에는 심리치료 혹은 정신분석과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우울증의 발생 빈도가 세계적으로 높은 까닭에 저명한 제약회사들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항우울제를 개발하여 내놓고 있기 때문에, 부작용 없고 효과 빠른 좋은 항우울제를 개인별로 맞추어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은 국내에도 조성되어 있으므로, 정신의학과 의원이나 병원 방문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선진국에 비해 비용은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저렴하다. 그럼에도 사회적 낙인(烙印)이 찍힌다는 구시대적 발상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쳐 악화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자살 시도, 그 후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 이 세상을 하직하고자 자살을 시도했다고 치자. 물론 몸이 축 쳐져서 반항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살 시도 후 병원에 실려 오기를 거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동안 꽤 오랜 시간 심사숙고 끝에 자살 계획을 짰지만, 후회는 아주 빨리, 금방 밀려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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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게이트(Golden Gate) 다리 혹은 금문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골든게이트 해협에 위치한 현수교로, 1937년에 완공 당시에는 가장 큰 다리였다. 유명한 다리인 만큼 투신 자살자의 숫자도 상당한데, 자살 시도에 대한 공식적 통계는 없으나, 1937~2012년 사이에 수습된 투신자의 사체가 1,600여 구에 달하기에 심지어는 ‘자살자들의 자석(磁石)’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게다가 유명하고 운치가 있는 곳이라, 이곳을 마지막 장소로 택한 사람들이 많았던 터였다. 특이하게도 거의 모든 투신 행위는 덩그러니 태평양만 보이는 다리의 서쪽 교각이 아닌 샌프란시스코의 멋진 도심지가 바라다 보이는 동쪽 교각에서 거의 대부분이 발생했다고 한다. 생에 대한 미련이었을까? 아니면 원망이었을까?

다리의 구조와 지형 때문인지 몰라도 투신자의 사망률은 98%에 육박한다. 하지만 반드시 생존자는 발생하는 법. 수십 명의 생존자들이 모여 모임을 구성했을 정도이다. 이들 중 다시 투신을 시도한 사람은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극약을 먹었건, 목을 매었건, 투신을 하건, 행위 즉시 바로 후회를 한다는 것이 자살의 특징이다.

뛰는 순간 주마등처럼 초음속으로 생각이 정리되며 “내가 왜 이랬지? 아차 속았다”라는 후회감이 바로 밀려든다고들 한다. 특히, 목을 매어 저산소증에 빠져 뇌 활동이 저하되어 버리면 자신이 풀고 나오고 싶어도 마음만 있을 뿐 몸이 움직이지 못하고 죽어가기 때문에 시도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맞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최성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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