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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치료

암은 모든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만만한 암도 있고 두려운 암도 있다. 정기적인 건강 검진으로 조기 발견이 가능한 암은 비교적 만만하다. 조기에만 발견한다면 완치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암 검진 사업에 포함되어 있는 위암이나 대장암이 대표적인 예다.

반대로 아무리 성실히 정기 검진을 받는다 해도 조기 발견이 어려운 암이 있다. 바로 췌장암이다. 과거 사형선고와 같았던 암은 눈부신 의학의 발전으로 이제 정복의 고지가 눈 앞이라고 한다. 하지만 췌장암만큼은 아직까지도 첨단 의학의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복통을 호소하는 남성복통을 호소하는 남성

우리나라에서 췌장암의 발생률은 전체 암 중에서 8번째지만 사망률은 4번째로 높다. 흔한 암은 아니지만 오래 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위암 환자가 진단 5년 뒤에도 생존할 확률(5년 상대생존율)은 지난 20년 동안 42%에서 74%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반면 췌장암은 9%에서 10%로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이처럼 췌장암의 생존율이 지극히 불량한 이유는 초기에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증상이나 검사 법이 없고, 빨리 자라고 잘 퍼지는 특성이 있으며, 수술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췌장암은 단지 불가항력의 존재인 걸까? 치료가 힘들고 어려운 암은 맞지만 제대로 알고, 제 때 대처한다면 무턱대고 두려워할 암도 아니다. 먼저 췌장암의 특징적인 증상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복통, 체중감소, 황달의 3가지 증상은 소위 췌장암의 3대 증상으로 일컫는 주요 증상이다.

간혹 가벼운 복통으로 장기간 소화제만 복용하다가 결국 췌장암으로 진단된 경우를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 복통이라 하더라도 자가진단은 금물이다. 따라서, 원인 모를 복통이 1주 이상 지속되면 일단 의사의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암에서 체중이 감소되지만 췌장암은 더욱 확연히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3개월 동안 아무 이유 없이 본래 몸무게의 5% 이상 체중 감소가 있다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황달 증상은 피부나 눈 흰자위가 노랗게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췌장의 머리 부위에 암이 생기면 담즙의 배출 통로가 막히면서 황달이 발생한다. 황달이 일단 나타나면 누구나 이상이 생긴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췌장 머리 부위에 발생하는 췌장암이 다른 부위보다 좀 더 일찍 발견되는 편이다.

물론 주요 3대 증상을 일찍 발견한다고 해서 췌장암을 초기에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췌장암의 빠른 성장 속도를 감안할 때 주요 증상을 확실히 알고 조금이라도 이른 시간에 발견하는 것이 치료에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은 예외지만 췌장암이 잘 생길 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검사하면 췌장암을 조기에 발견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췌장암의 위험이 높은 사람들은 직계가족에서 2명 이상의 췌장암 환자가 있는 사람, 본인이 포이츠-제거스 증후군(Peutz-Jeghers syndrome) 환자이거나 유전성췌장염 환자인 경우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반드시 췌장 전문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내시경초음파나 자기공명영상검사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또한, 50세 이후에 당뇨병으로 진단된 사람도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50세 이후 당뇨병으로 진단된 사람 100명 중 1명이 당뇨병 진단 3년 이내에 췌장암으로 진단되었다고 한다. 이는 췌장암이 췌장의 혈당 조절 능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적으로 50세 이후에 당뇨병으로 진단된 모든 사람이 췌장암 검사를 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체중 감소가 있었던 당뇨병 환자가 혈당 조절 이후에도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꼭 췌장암 검사를 고려해야 한다.

췌장암의 치료는 크게 증상 치료, 수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요법으로 나눌 수 있다. 한 가지 방법으로만 치료하기 보다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여러 치료법을 혼용하기도 한다. 췌장암을 운 좋게 조기에 발견하고 수술하는 것 외에 완치를 위한 치료법은 없다.

그러나 최근 췌장암 치료에 대한 많은 연구로 생명 연장 효과가 뚜렷한 치료법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증상 치료 법으로 췌장암 환자의 통증과 황달 등의 증상을 해결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완치에서 멀어진 췌장암 환자들의 남은 인생에 긍정적 보탬이 된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췌장암 환자들의 애끓는 심리를 이용하여 사기 행각을 벌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췌장암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검증되지도 않은 사이비 치료법으로 환자를 현혹하는 광고가 넘쳐난다. 건강을 잃은 사람이 재산과 마음까지 잃게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경계가 필요하다.

췌장암의 원인과 발생 과정은 아직까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췌장암 발생에 관계하는 유전적, 환경적 요인들만 몇 가지 밝혀졌을 뿐이다. 우리는 췌장암과 관련된 환경적 요인들을 알고 관리함으로써 췌장암 예방을 기대할 수 있다.

췌장암의 가장 중요한 위험 요인은 바로 담배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췌장암의 발생률이 2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비만은 약 1.5배 높은 발생률을 보인다.

건강한 식생활과 꾸준한 운동으로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은 췌장암뿐만 아니라 모든 질환의 예방에 도움이 된다. 육류 중심의 고지방, 고칼로리 식사를 피하고 잡곡과 채소를 많이 먹는 쪽으로 식생활을 개선해야 한다.

췌장암이 당뇨병을 만들기도 하지만 거꾸로 당뇨병도 오래되면 췌장암을 만든다. 20년 이상 된 당뇨병은 췌장암 발생률이 2배 높다. 따라서 당뇨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와 단순당의 과도한 섭취는 피하고 일주일에 18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을 지속하는 것이 좋다.

췌장암이 주는 공포감 때문에 조금만 배가 아파도 췌장암 걱정부터 하는 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췌장암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2015년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는 5539명, 췌장암 사망자수는 5439명으로 거의 비슷하다. 자동차를 타면서 죽을 걱정부터 하는 사람은 없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교통수단을 이용하지만 실제 사고로 사망에 이르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배가 아프다고 췌장암 걱정부터 할 필요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췌장암을 두려워하기 전에 담배를 끊고 운동화 끈을 조여보자. 건강과 행복은 미리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혜택이라는 사실을 췌장암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현일식 원장 (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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